▲2박 3일 동안 우리들의 집이었던 캠핑장.
양학용
여행을 떠나오기 6개월 전. 제주도에서 사전캠프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오월의 제주는 하늘과 땅에 사는 모든 것들이 푸르렀지만, 아이들은 모든 것을 낯설어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낯선 캠프 방식에 대해서도. 우리들의 캠프는 캠프라고는 했으나 이렇다 할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텐트를 치고 나면 하루 한라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2박 3일의 시간이 통째로 그들에게 주어졌다. 뭉텅뭉텅 빈 시간들이 그들에게 날것으로 던져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 낯섦과 어색함의 빈틈들을 메워가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의 힘은 신비롭다. 텐트를 치며 옥신각신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쌀을 씻고 야채를 썰며 깔깔거렸고, 방금 만난 친구 손을 잡고 바다 끝자락으로 붉게 떨어지는 태양을 따라 조개를 주으러 다녔다.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먹자고 했더니 아이들 절반 이상이 나무꾼이 되어 산과 바다를 돌아다녔다.
이튿날에는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고 와서 늦은 밤 전등 하나 없이 용천수 노천탕에서 함께 목욕을 했다. 한라산 지하 암반을 통과해온 그 차가운 얼음물에 맨몸을 담그고도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노천탕의 천장 없는 돌담을 넘어설 때, 우리들의 캠프는 어느새 '여행'이 되어 있었다. 함덕바다에 두 개의 달이 뜨고 아내와 나는 우리들이 함께 한 그날의 경험들이 아마도 힘든 라다크 여행을 밀고 가는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하였다.
제주도 캠프 후에 몇몇 부모님들께서 궁금해 했다. 캠프를 어떻게 운영했기에 아이들이 돌아와 저녁 내내 캠프와 친구 이야기에 몰입하는지, 또 이토록 들뜬 마음으로 여행학교를 기다리는지.
비결이랄 것은 없다. 다만 아이들끼리 있도록 해주었을 뿐이다. 무엇이든 그들끼리 해결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어른인지라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 때는 눈 질끈 감고 비켜주면 된다. 그리하여 대책없이 물을 부어 찌개를 한강으로 만들어도, 텐트를 어설프게 쳐서 태극기도 아닌 것이 밤새 바람에 펄럭거려도, 그것이 목숨에 지장이 없는 한 그들의 여행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