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페트루치오의 내기는 남성들 간의 서열 다툼을 불렀다. 결국 페트루치오의 아내인 카테리나가 예상을 깨고 가장 먼저 왔고, 나머지 아내들은 오지 않았다. 페트루치오는 적어도 '아내를 길들이(Tame)는 쪽'에서는 남편 집단 중 가장 우위에 서게 됐다.
명절은 가부장제 사회의 최대 이벤트<말괄량이 길들이기>에 따르면 한국의 명절은 가부장제 사회의 최대 이벤트다. 가부장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이라는 특수한 이벤트로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가 아직은 공고하다는 것을 재확인 받고 싶어한다. 형들의 틈바구니에서 물을 가져다달라고 큰소리를 내는 그 또한 페트루치오처럼 어떻게든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고 싶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막내이기 때문에 소외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그의 증언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치오를 떠올렸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공간에서 보여주기식 행동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 여러 세대가 한 공간에 섞여있다 보니 가장 윗사람인 조부모의 눈치를 먼저 볼 수밖에 없다. 조부모는 과일을 내오라는 말로, 그동안 힘들었을 테니 명절에라도 편하게 쉬라는 말로 남녀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며느리에게 전가한다. 명절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허용되는 공간이다(물론 그 전통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빠르게 무너지는 평시의 고정적인 성 역할을 오히려 명절 때는 수행하기가 더욱 용이해진다.
하지만 만약 페트루치오의 장인이 자신의 딸을 그렇게 다루지 말라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보다 못한 그의 형들이 그에게 직접 일어나서 물을 떠오라고 강력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행동에 근거를 가져다주는 관전자들이 그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촉구한다면 그 결말이 조금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누군가 페트루치오 같은 일을 할 때, 결정적인 관전자가 되지는 말아주시길. 그는 관전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의 옳음과 우월성을 증명받고 싶어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그 특유의 여성 비하적인 행동과 대사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한편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옹호도 받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이 그런 종류의 옹호를 받을 시대는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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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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