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를 의자삼아 식사하는 강춘현씨 부부설 명절에는 늦게 둔 딸들이 여수와 순천에서 직장생활하는데 네 식구 오븟하게 맞을거라고 한다.쌀 한가마라도 기부한 게 마음이 무척 편하다고 한다
오병종
이곳 무료급식소는 예전에 장날 야외에서 '국밥장터'가 반짝 서는 형태와 유사하다. 공터에 야외 식탁이 깔리고, 밥차에서는 떡국을 끓이고, 식사 대접 후엔 설거지 까지 다 마치면 다시 공터가 된다. 이 '반짝식당'은 벌써 7년째 이어오고 있다. 나 역시 때 마침 주 5일 근무가 되면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여기서 주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여기는 국가나 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고 모든 게 기부와 자원봉사로 유지된다. 밥차를 운영하는 여수노인복지관 김진우 관장의 얘기다.
"처음에는 주 1회, 점차 늘려 지금 주 3회 출동합니다. 2009년도 5월부터 시작했으니까, 3월이면 곧 1000회가 됩니다. 매번 자원봉사자들이 돕습니다. 비용이나 식재료 역시 기업체나 개인들이 기부하고요. 어려운 어르신들의 '점심 나눔 공동체'라고 보면 됩니다. 전체적으로 봉사와 기부로 운영된다는 점과 끊기지 않고 1000회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지역사회의 건강성이 대단한 거죠. 오늘 떡국을 드신 어르신 분들이 180분 정도 됩니다. 평소 대락 200명 정도 찾아오시죠. 봉사자들은 단체별로 날짜를 잡아서 안 겹치도록 주 단위, 월 단위로 배치를 했습니다. 단체 봉사자만 20개팀이 넘구요, 인원은 100명에서 300명 정도 됩니다. 개별 봉사자도 수백 명 되고요."이날 매월 첫 주를 맡아주는 여수 백병원에서 봉사자들이 12명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7년째 이어어고 있는데, 봉사뿐 아니라 병원 구내 식당에서 마련해온 반찬까지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허드렛일은 물론 공연과 음향까지 봉사해준 '모두모아 봉사대'에서 13명이 도왔다. 나를 포함한 개별적으로 참가한 봉사자들이 15명 정도. 모두 4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오늘 함께했다.
마무리하고 오는 길에 열차로 역귀성 하실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같은 방향이어서 여천역까지 모셔다 드렸다. 평소에도 무료급식소에서 가끔 대화를 가끔 나눈 분이라서 어려움 없이 쉽게 차를 타신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시는 분이어서 한국전력에서 퇴직한 후 개인 사업도 하시다 은퇴했고, 할머니와는 떨어져 혼자 사신다는 것 까지 알고 있는 분이다.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겸 장만오(가명, 74) 할아버지에게 차 안에서 말을 걸었다.
"차표는요? 몇 시 열차로 끊으셨나요?" "역 귀성은 안 복잡하다네. 예매 안했어. 그냥 가서 되는대로 차표 끊을려고..."말씀을 하시는데 평소와 달리 별로 힘이 없으시다.
"할머님하고 같이 안 사신다고 그랬죠?""두 아들하고 딸이 서울 사는데, 손자들 키우느리고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나 혼자 20년 넘게 여수서 살았어. 물론 오고 가기는 하지. 한전 다닐 때 서울서 살다가 여기서 사업하느라고 나만 혼자 살았지." 두 아들도 대학까지 보냈고, 둘째는 박사까지 마쳤다. 딸도 잘 산다고 했다. 왜 힘이 없을까?
"자식도 만나고, 손자들도 보고, 좋겠습니다. 새뱃돈 두둑해야겠는데요?""그러면 좋겠는데, 그럴 형편이 못돼. 나도 한전 다녔고, 나와서는 또 사업도 하고, 잘 나갔지. 그런데 자식들에게 집 사는데 도와주고 하느라고, 어려워. 사업할 때는 늘 잘될 줄 알았지. 이렇게 늙고 힘없이 될 줄은 몰랐어. 노후대비 잘 했어야 하는건데. 남은 건 여수 집 한 채여. 자식들 집 사주고 도와준 것하고...""아들들이 대기업 다닌다고 안했나요?" "박사까지 마친 둘째가 간암이여. 회사 임원인데, 이젠 지 몸 간수하기도 어려워. 아이들도 어리고 그래서 마누라가 거기 가 있어. 그래서 둘째는 나를 못 도와 준지 오래됐지. 큰 아들만 그동안 용돈 10만 원씩 줘서 살았는데, 큰 아들도 새해들어 문제가 생겼어. 대기업 다녔는데, 2015년 말로 회사 명퇴하고, 자회사 어디로 나가기는 나가는가 봐. 형편이 어렵게 되었어. 아들 용돈 10만원에 노령연금이 전부여서 나는 1500원짜리 복지관 밥도 못사먹어. 허허허... 이제 아들 용돈 10만 원도 어려울 것 같어." 거기다 좋은 아파트 장만한다고 하면서 빚을 낸 큰 아들은 '하우스 푸어'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아파트 값이 꼭대기로 제일 비쌀 때 50평짜리로 옮겨서 샀는데, 내가 돈도 도와주고 대출도 받았어. 근데 아파트는 안 오르고, 또 안 팔리고... 대출 이자 갚느라고 힘든가 봐.거기다 명퇴까지 했으니. 그래서 올해는 설이 설이 아니고, 아들 집에 가는 데도 발길이 무겁고, 가고 싶지가 않네. 그래도 명절인데 여기 혼자 있기가 싫어서 가기는 가는 거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공유하기
"설? 아들 집에 가긴 가는데... 발길이 무거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