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 된 충남 당진 공동격작회 회원들.1937년 6월 촬영.
심재호
심재호씨는 이 책에서 '상록수' 남주인공(박동혁)의 실존 인물이자 '공동경작회' 회원었던 심재영의 회고 글을 통해 공동경작회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공동경작회는 마을 내 야학 사업을 위한 사업기금을 논농사를 통해 마련하기 위해 결성됐다. 처음엔 12명으로 출발해 2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국내 정세보고, 작업일정 결정, 농사개량법, 교양강좌 등을 논의했다. 공동경작한 논도 처음 7마지기에서 23마지기로 늘어났다.
이들은 못자리 개량, 줄 모심기, 비배관리(거름을 잘 주어 땅을 기름지게 하여 작물을 가꾸는 일), 보리 외골 파종법 보급, 우수 종자 공급 등으로 수확량을 갑절로 늘렸다. 술과 담배를 끊자는 금주 단연 운동도 벌였다. 이발 기구를 구매, 회원들이 이발사가 돼 전 동민의 머리를 깎아줬다. 인력 탈곡기도 사들여 타작할 때 쓰게 했다.
강현수 충남연구원장 "86년 전 공동경작회는 '3농 혁신' 사업의 실 모델"
고리채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곗돈을 싼 이자로 빌려줬다. 마을 안길을 넓히는 일에도 나섰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의 강제 식량 공출로 공동경작회가 존속할 수 없게 됐다. 경작회는 소유 전답을 모두 매각해 회원들에게 분배하고 부득이 해산했다.
하지만 농한기마다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친 야학(초등반, 청장년반, 부녀반)만은 계속됐다. 야학은 해방 이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일본어를 빼고 국어, 산수를 가르쳤는데 국어교과서는 '농민독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