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적 전문 고서적점 제일서림 내부. 각종 일본 잡지와 전문서적들이 들어차 있다.
이해린
명동 번화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길. 자칫하면 잊고 지나칠 만한 골목길 구석에 작은 서점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내부는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벅찰 만큼 좁다. 주인이 서 있을 자리는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작다고 무시하면 큰코 다친다. 영업부진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구청에서 "한류 영향도 있고 외국인도 많이 오는데 자리를 지키면 안 되겠느냐"는 간절한 요청을 받은 곳. 4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국서적 전문상 '제일서림'이다.
"번(BURRN) 있나요?" 갑작스레 방문한 손님의 요청에 주인은 서가를 뒤져 재빠르게 책을 찾아 준다. 2평이 채 안돼 보이는 서점 내부 벽에서 빈 곳은 찾을 수 없다. 각종 크기의 잡지와 책들이 7단 서가를 빼곡이 채우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되자 화교학교 앞 골목엔 15개 정도의 외국 서적 수입상들이 들어섰다. 200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루던 서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지금은 이곳만이 남아 있다. 덕분에 서점 안에는 70년대 책부터 최근 잡지까지 시간을 뛰어넘은 책들이 공존한다.
주인 박동민(58)씨는 "한 말레이시아 관광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책을 여기서 발견했다며 우리 서점을 그림으로 그려 엽서로 부치기도 했다"며 "대형 서점엔 없는 책이 여기엔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5년간 유학했던 진영(34)씨는 "1년 전 길을 가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며 "일본 유학 시절 자주 보던 책이 다른 서점엔 없어서 매번 이곳에서 주문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