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새정치연합의 2014년 통합배경을 설명하는 이훈평 전 의원 인터뷰
MBN 동영상 캡처
특히 권노갑 고문의 최측근인 이훈평 전 의원이 MBN과 했던 2014년 3월 18일의 인터뷰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새롭게 출발했던 안 의원의 '새정치' 실험은, 이미 출발부터 실패의 싹이 그 안에 내재돼 있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2월 13일 권노갑-안철수 회동이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여기에는 양쪽이 처해있던 각각의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통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당시 김한길 대표는 초라한 당 지지율 때문에, 6.4 지방선거에서의 참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안철수 위원장 역시 인재영입에 거듭 실패를 하면서 선거준비에 거의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2월 28일 오후 4시, 국회 본회의 도중에 김한길 대표가 갑자기 민주당 최고위원들을 호출한다.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대로 기초선거에서는 공천을 하지 않기로 하자"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다(안철수 측과 최종적으로 합의한 통합의 명분이 바로, '기초선거 무공천 원칙'이었던 것).
애초부터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었던 만큼, 민주당 최고위원들 사이에 반대의 목소리는 나오기가 힘들었다. 김한길 대표의 책략이 그대로 적중했던 것. 김 대표는 곧바로 안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와 같은 내용을 통보하고, 다음 날인 3월 1일 오전에 약 2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 다시 만나서 4시간가량의 논의 끝에 마침내 3월 2일 새벽 0시 40분쯤, 두 세력의 전격적인 통합을 합의하기에 이른다. 겨우 총 6시간 30분이 걸린,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은 합의였다.
그러나 통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우선 민주당 내부에서는 소위 '친노'진영을 철저히 배제한 가운데 비밀리에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는 동교동계와 김한길 대표가 당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였다.
그 결과 통합과 동시에, 동교동계의 막후 지원 하에 이루어진 김한길-안철수 패권연대가 마침내 탄생했다. 따라서 동교동계와 김한길, 안철수 의원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친노 패권주의'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허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베일에 가린 채 몇몇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통합논의를 이어갔기 때문에, 양측의 조직구성원인 민주당 당원과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들은 그 과정에서 그저 구경만하는 들러리 신세였다. '당내 민주주의', 혹은 '당원주권'이라는 대의는, 그저 쓸모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안철수 위원장의 경우, 창당 작업을 함께 진두지휘하던 핵심 측근들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래서 당시 윤여준 전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민주당과의 합당에 대해) "충격", "실망"이라며 "공식기구와 규약을 무시한 것이고 사실은 핵심 내용을 나도 모른다. 새정치? 하하하"라는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인해, 김성식, 금태섭, 윤영관, 최장집 등 안 위원장과 지근거리에 있었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안 의원의 곁을 떠나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안 의원의 일방적인 통합선언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평소 안철수 의원의 부드럽고 순한 표정의 이면에는, 함께 고생하던 최측근도 일순간에 토사구팽 당할 수 있는 냉정함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설득과정에서 권노갑 고문이 안 위원장에게 제시했던 50대 50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극심한 공천갈등을 겪은 이유는, 이 같은 '밀실야합'이 그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만약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과정에서, 통합의 원칙과 내용이 양측 구성원과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공개되었다면, 아마도 그 같은 부작용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김한길 대표가 자기 사람들을 착실히 챙기면서 철저하게 실리를 얻었던 반면, 정치인 안철수에게는 온갖 비난의 화살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던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명분'과 '실리'를 모두 상실한 채, 안철수의 '새정치' 브랜드만 점점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 때문에 이 대목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안 의원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의원, 정말 고문님 말씀 믿을만 하던가요?"링컨 흉내를 낸 '국민의당', 거기에는 '국민'이 없다지난 1월 8일, 안철수 의원은 신당의 당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인용해서 자신들의 당명을 지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복무하는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로 시작되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역사상 가장 짧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연설로 유명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인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라는 부분은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표현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어 왔는데, 안철수 의원은 바로 이 부분을 당명에 인용한 것이다.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남북전쟁 전에 미국 북부 주들의 인구는 약 2천200만 명이었는데, 이중 무려 10%에 달하는 220만 명이 전쟁에 참여했고 36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1863년 11월 19일에 링컨이 연설했던 게티스버그는, 남북전쟁 당시 가장 치열하고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이다. 남군 약 7만 5천 명과 10만 이상의 북군이 격돌한 가운데 게티스버그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1863년 7월 2일부터 불과 3일 만에 7천 명 이상이 죽고 5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가 끝나자, 그 당시 게티즈버그의 평온했던 들판은 온통 말과 사람들의 주검으로 가득 메워진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비록 북군이 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그 결과 남북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북군의 희생 또한 엄청났다. 이런저런 고상한 목적을 명분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참혹한 전쟁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따라서 링컨이 위로와 함께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통합'이었다.
그런데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는 결코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의 행보가, 과연 링컨이 말했던 '통합'의 메시지와 맞아떨어지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당초 안 의원은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연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작년 11월 29일의 기자회견을 통해, '혁신 전당대회'와 함께 '통합적 국민저항체제'를 제안한 바 있다(당시 대부분 언론의 초점이 '혁신 전당대회'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통합적 국민저항체제'에 대한 주장은 별로 부각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독단과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통합적 국민저항체제'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참패하면 이 나라의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실로 두렵고, 구체제를 부활시키려는 역사의 퇴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며, 국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결국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야권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안 의원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안의원은 스스로 탈당을 하고나서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이와는 정반대로 '연대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반면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총선이 끝나고 제3당이 되면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일종의 '캐스팅 보트론'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정치인 안철수 본인은 정권교체의 명분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말과도 같은 얘기다. 정권교체는 말 그대로 야당과 여당이 교체되는 것을 말하는데, 제3당의 위치에서 그때그때 줄타기를 하면서 권력의 떡고물이나 받아먹겠다는 발상이 어찌 정권교체 의지와 양립할 수 있겠는가?
이 대목에서 안철수 의원은 국민들 모두가 집단적인 건망증에라도 걸린 것으로 혹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자기 편리한대로, 그때그때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국민의당은 그저 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일념때문에, 입법청탁 혐의관련 1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신학용 의원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부패 혐의로 기소만 되어도 당원권을 정지하고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던 안 의원의 주장은, 그야말로 '허무개그'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