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
기준서
한국의 대표 여성 시인으로 꼽히는 신달자 시인. 그녀는 지난해 12월,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15편의 이야기에 64장의 사진을 더해 <신달자 감성 포토 에세이>를 펴냈다. 삶의 길 위에서 힘들어 할 누군가에게 '링거 한 방울' 같은 책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글들이다. 그런 시간을 겪은 사람으로서, 힘겨워 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가르치기만 하려는 어른들이 너무나 답답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중략) 건방지게도 어른들을 내 허리 아래로 끌어내리는 망발을 저지르면서 그것을 꿈이라고 해석하곤 했다. 어른들은 다 웃겼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 바보 같았다. 그런 덜떨어진 우월감이 또한 청춘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청춘의 시기란 20대라고 생각한 그것부터 잘못이었다. 건방지게도 나는 30대가 되면서 청춘이 다 지나갔다고 말했으니까." - <신달자 감성 포토 에세이> 124쪽손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삶에 대한 회고, 지난 시간에 대한 덤덤한 이야기가 정호승 시인의 추천사처럼 '소담한 눈꽃의 언어'로 새겨져 있다. 많은 것을 이뤄낸 어른을 마주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부담이 되지만 그날 시인이 보여준 모습은 앞선 긴장들을 모두 무너뜨렸다. 묻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미리 적어온 질문과는 달리 튀어나갔고, 시인은 긴 인터뷰 후에도 상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모두 마실 수 있도록 마주 앉아 배려했다. 어느새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의 인터뷰이가 아닌 따뜻한 어른이었다.
-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의 단편들이 책에 담겨 있더라고요. 그 속에서 위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문학사상'에 연재하신 글을 모아 책으로 엮으셨는데, 어떤 기획으로 시작된 연재였나요?"'방황하는 사람들을 손잡아주자'라는 테마를 가지고 쓴 글이에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잖아요. 특히 젊은이들.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 후에도,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힘든 사람들. 우리 눈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인데도 마주 앉아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 사람도 결국에는 눈물 바가지야. 저도 삶의 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선 사람이에요. 그때는 그냥 '이 언덕, 이 땅은 내 발로 디뎌야 낮아진다. 자꾸 밟고 걸어서 평탄하게 만들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공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거죠.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예요. 내 글을 보고 누군가 링거 한 방울 맞는 느낌이 든다면 좋겠다는 거."
-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나 어머니에 대한 회고 등 책에 소개된 이야기 너머의 삶도 궁금해지더라고요. 특히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크신 것 같았어요."우리 어머니는 기역 자도 모르는 문맹자였어요. 딸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시절에 깡촌에서 마산이며 부산이며 딸들을 유학 보냈죠. 딸들을 공부시키면 본인 인생도 바뀔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여자들을 대학도 잘 안 보낼 때에요. 딸을 유학 보낸다고 집안이 난리가 났는데, 그 난리가 난 후에도 나를 부산으로 또 보내셨어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남자 그거 별 거 아니다." 평생을 시골에서 사신 분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그러셨어요. 어머니에게 동서가 한 명 있었는데 그분은 경복여고를 졸업한 분이었거든요. 당시 경복여고 나왔다고 하면 정말 명문학교 나온 것 같은 인정을 받았어요. 게다가 아들이 귀했던 시대에 숙모는 6남 1녀를, 저희 어머니는 1남 6녀를 낳았어요. 여러 가지로 동서와 본인이 얼마나 비교가 됐겠어요. 딸들을 동서보다 더 똑똑한 여자로 기르겠다고 다짐하셨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 강조하신 게 "돈 벌어라. 내가 살아보니까 여자도 돈이 필요하더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자존심도 강하신 분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쓰는 것이 자존심 상하셨던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말씀하셨던 건 "행복한 여자가 돼라"라는 말이었어요. 첫 번째, 두 번째를 다 이루고도 행복한 여자가 되라고. 모두 다 우리 엄마가 갖지 못한 것이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저도 딸이 셋인데 나중에 우리 딸들에게 편지를 쓴다면 우리 어머니와 똑같은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싶어요."
상실의 시간들을 견디게 한 어머니의 말 "행복한 여자가 돼라"
- 첫사랑, 부산 유학 등 학창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도 짧게나마 나오는데, 잔상이 오래 가더라고요. 당시 부산으로 유학을 떠난 후 바다를 보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많이 키우셨다고 했는데,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사춘기 시절에 찾아온 변화도 컸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