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앞 은행나무의 여름과 가을 모습. '김굉필 나무'라는 이름을 얻은 이 나무는 그의 외증손인 정구가 1607년에 심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만진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 35번지에 있는 도동서원은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서원으로 꼽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다섯 서원이 모두 대구, 경북에 있다는 사실이다. 도동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안동, 옥산서원은 경주에 있다.
이들 5대 서원들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끄떡없이 건재했다. 물론 그때 살아 남은 서원이 전국적으로 47곳이었으니 5대 서원들이 훼철되지 않은 것이야 놀랄 일도 아니다. 서론의 요지는 '김굉필(1454~1504)을 기리는 도동서원은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원 철폐 |
조선의 대표적인 사학 교육기관인 서원의 효시는 1543년(중종 38) 주세붕이 설립한 백운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1550년(명종 5)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현판)과 소유 농토를 받아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이 된다.
서원은 인재 양성과 선현 배향, 유교적 향촌 질서 유지 등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차차 당파 형성, 백성 토색, 지방관청 압박 등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703년(숙종 29) 서원 설립 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1741년(영조 17)에는 1714년 이후 건립된 서원을 훼철한다. 하지만 기존 서원의 폐단은 더욱 심해졌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 민폐 척결, 국가재정 건실화를 목표로 서원 철폐를 시작한다. 결국 전국 650개 서원 중 47개 서원만 남고 모두 훼철된다.
|
도동서원의 상징이 된 '김굉필 (은행) 나무'
다람재에 올라 도동서원 전경을 먼저 감상한다. 낙동강을 휘감아 끼고 있는 도동서원의 경치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김굉필의 한시 '노방송(路傍松)'과, 그것의 번역문을 새겨둔 시비를 읽고 난 후 넘어질 듯 급하게 엎어지는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런데 도동서원에 닿으면 눈길이 온통 거대한 은행나무로 쏠려버린다. 도동서원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살아남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라도, 서원보다 은행나무에 더 관심이 몰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5대 서원 중 한 곳을 찾아 와서, 그것도 사적 488호인 도동서원에 와서 역사유적도 문화유산도 아닌 한낱 나무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서원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김굉필 나무'부터 먼저 둘러본다. 아름드리 거목이 수많은 가지를 땅으로 드리운 채 짙은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는 여름이나, 햇살과 바람 속에 숨어 있는 자연의 빛깔을 담뿍 품은 노란 잎사귀가 사방으로 흩날려 멀리서 찾아온 나그네의 마음을 뒤흔드는 가을이나, 이 은행나무는 참으로 사람들에게 전원의 경이를 깨닫게 해준다. 누가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정의했던가! 은행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인도 이곳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 '귀거래'의 정서에 듬뿍 젖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