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런 기타요즘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기타. 거의 5년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다.
이정혁
하나뿐인 남동생은 공부 대신 기타를 선택했다. 아버지가 술김에 때려 부순 기타를 보고 녀석은 그날로 가출했다. 집을 나가며 철문에 남긴 주먹 자국은 그 후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빚을 내어 새로 산 기타를 보고 녀석은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녀석의 오른손은 깁스를 두른 상태였고, 새 기타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만 봐야 했다. 기타를 치는 사람은 많았지만 기타리스트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동생은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대학 시절, 연극반 맞은편 지하 동아리방에 노래패가 있었다. 복도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선배들의 실력은 연극 연습도 잠시 잊고 물끄러미 쳐다보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으나, 담배를 꼬나물고 기타를 치는 모습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청계천 8가>라는 노래를 나중에 정식으로 듣고 나서 그때 연습하던 것이 그저 허세였음을 알게 됐지만,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복도에서 기타 줄을 튕기던 실루엣은 추억 속 동경의 대상이었다.
스물아홉, 서른을 코앞에 두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심취하게 됐다. 가사의 깊이도 제대로 모르면서 술만 마시면 노래방에서 악을 써댔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는 내 곁에서 일행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그럼에도 광석이형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 즈음에 나의 버킷리스트에 '광석이형 노래 부르며 기타치기'가 등록됐다.
내가 다시 기타를 잡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