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의 부부싸움 장면
the simpsons
이맘때쯤이면 항상 그렇다. 다가오는 설이 달갑지 않다. 다 커서도 받는 세뱃돈이 무색하게도 기대보단 불안이 크다. 오래된 경험들이 불안을 부추기는 탓이다. 아빠의 고함이나 엄마의 한숨이 익숙하게 떠오른다. 유년의 언젠가부터 바로 작년까지 매년 그랬다. 명절 음식 앞에서 만두 대신 불꽃을 튀겨대는 광경이란, 척 보기에도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불꽃은 언제나 사소했다. 갈비찜이 짜다든지 명태전이 눅눅하다든지 뭐 그런 거. 안방에서 TV나 보고 계시던 우리 집 남정네들은 음식 앞에서 항상 일류 미식가가 됐고 피로에 찌든 엄마에게 젓가락 딱딱거리는 그 예의 없는 품평은 아무리 봐도 폭력이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고 했나. 갈비찜 공격에 엄마가 짜증이라도 낼라치면 불길은 더 크게 번질 뿐이었다.
음식에서 주부의 미덕으로, 또 거기서 자식 교육으로, 종국엔 "당신 때문에 아들 망쳤다"는 고함과 함께 형에 대한 인생비판으로. 순식간에 '망한 인생'이 된 형은 있는 힘껏 얼굴을 찌푸린다.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유일 책임자로 내몰린 엄마는 말하기도 지쳐 입을 다문다.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상으로 아무 공격도 받지 않은 나도 몇 마디 늘어놓다가 곧 묵묵히 갈비찜을 입에 넣는다.
가부장제 성차별은 물론 학벌주의, 청년취업난, 언어폭력 등등. 몇 가지 문제가 겹쳐있는지 헤아리기도 힘든 이 밥상 위의 불꽃은 언제나 비슷한 결말을 맞는다. 식사 끝, 헤쳐모여. 남자들은 이 방 저 방 TV를 보러 흩어지고 엄마, 숙모는 고무장갑을 손에 잡는다. 설거지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소음이다. "내가 할게요" 비겁한 '인서울 4년제'가 한 마디. 거기에 엄마는 항상 "됐어"라고 답한다. 여담인데, 놀랍게도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도 아니다.
그러고 나면 짐짓 과일이나 가져오라 배짱부리는 우리의 가부장도, 그런 아빠를 저주하는 '망한 인생'도, 설거지하며 화를 삭이는 엄마도, 죄책감을 자기 위로 삼는 방관자도 시골집이 달갑지가 않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민족 대명절, 그렇게 설마다 가족은 괴물이 된다. 다음 날 아침이면 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꿰매겠지만, 거기에 쓸 마취약도 없기에 다들 이렇게 생각할 거다. '집에 가고 싶다'
어쩌면 설은 '가족'이 짊어진 갖가지 모순들이 서로를 뽐내는 경연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스펙터클 한 것이 대명절이라면 대명절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경연보단 모순 자체다. 그러니까 본질적인 문제는 일 년 중 2, 3일 남짓한 이 대명절보단 지금껏 지내온 1년에 있다. 그렇게 1년, 또 1년을 보내다 보니 청소년 방관자는 이렇게 커서 청년이 됐다.
여전히 무력하고 비겁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