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에게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이희훈
30일 아침 이씨는 사망한 할머니의 묘지를 찾았다. 북어포와 과일 몇 개를 내려놓았다. 절을 올린 이씨가 "할머니 죄송합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 한 행동은 후회를 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무릎 꿇은 채 말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유가족 박성우(58)씨가 이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머니가 자네보다 걔네들(가짜 범인)이 안타까워서라도 편히 못 있었을 거야. 지금이라도 자네가 와서 과감한 용기를 내줬다는데서 어머니도 지하에서 뜻을 많이 받아줄 거야. 앞으로 변호사님 협조 잘해주고 지금부터는 참회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거겠지. 하여튼 이렇게 돼서 고맙네."가짜범인, 유가족이 진범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이상한 장면은 이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어깨를 걸었다. 이제 이들은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재심을 시작하려 한다. 진짜 범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가짜 범인들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건의 진실을 알려달라 요구하고 있다.
모두 적어도 가해자가 바뀌었던 17년 전과 지금은 다를 것이라 믿고 있다. 진범을 용서한 피해자들은 지금 다른 가해자에게 마지막 참회의 기회를 주려 한다.
하지만 17년 전 공권력의 지엄함을 보여줬던 사람들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가난한 3명의 10대에게 그리도 가혹했던 경찰관들은 승승장구했다. 이제 간부급이 된 한 경찰관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경찰로서의 사명감을 강조하는 인터뷰 기사가 첫머리에 뜬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취재만큼은 응하지 않고 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소년들을 기소했고, 다른 검사가 잡은 진범을 넘겨받고도 자신의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지 않았던 검사는 지금 국내 굴지 로펌의 변호사가 돼 의뢰인의 인권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재판을 맡았던 배석 판사는 이후 정치에 입문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다. 소년들의 억울함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던 당시 국선변호사는 판사가 됐다. 만약 이 사건의 재심이 열리게 된다면 그가 부장판사로 있는 법원이 사건을 맡게 된다.
가짜범인과 유가족이 묻고 싶은 것은 이씨의 죗값이 아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10대 3명에게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한 고백을 경찰과 검찰, 법원에게서 들으려는 것이다. 그 고백은 법원이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을 결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