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 호수는 물이 매우 맑았다.
김동범
르완다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안전한 나라, 천 개의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닌 동족간 학살로 더 유명하다. 학살이라고 하면 쉽게 와 닿지 않는데, 숫자를 확인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르완다 학살'이 있었던 1994년 당시 80일간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끔찍하고, 비극적인 역사는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20여 년 전, 르완다는 지옥이었다.
동아프리카 비자(케냐, 우간다, 르완다)를 가지고 있던 나는 르완다에 쉽게 입국했다. 그리고 수도 키갈리(Kigali)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서쪽에 있는 기세니(Gisenyi)로 향했다. 지도를 대충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라 만만히 봤는데 기세니까지 5시간이나 걸렸다.
기세니는 콩고 민주 공화국(DRC)의 고마(Goma)와 국경을 접하는 곳으로 키부 호수나 근처에 있는 화산을 오르기 위해 여행자가 찾는 곳이다. 가볍게 동네를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키부 호수 부근을 걸었는데 물이 매우 맑았고, 아프리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쓰레기가 하나도 없었다. 또한 이 주변은 잘 꾸며져 있어 여느 유명한 해안가 못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게다가 호수 부근은 부촌인지 거대한 정원을 가지고 있는 근사한 집이 많았다.
아프리카에서 안전하고 깨끗하기로 손꼽히는 르완다케냐 나이로비에서 잠깐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 다미씨를 기세니에서 다시 만났다. 나이로비에서 뜻하지 않게 오래 머물게 돼 다시 만나기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인지 아주 천천히 느긋하게 여행하는 성향이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느릿느릿 여행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키부 호수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콩고 민주 공화국 국경 앞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국경은 가까이에 있었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동쪽은 내전이 끊이지 않아 여행자가 접근하기 힘드나 고마는 그나마 안전한 데다가 활화산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찾는 편이다.
가보고 싶긴 했었지만 당장 비자 문제가 걸려 국경에서 돌아섰다. 아프리카에서 국경을 넘을 때면 대충 나무로 된 막대기 몇 개로 가로막은 허술한 국경이 많이 보였는데 여기는 뭔가 다른 나라의 국경처럼 사무실도 잘 갖춰져 있고 깨끗했다. 기세니는 하루 걸었을 뿐인데 다 파악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딱히 오래 머물만한 도시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