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겉그림. 이 만화책이 한참 나오는 동안에도 아직 우리 집 큰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대원씨아이
그나저나 요츠바는 아버지한테 "아빠는 이담에 크면 뭐 할" 생각이냐고 묻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아버지는 요츠바한테 무엇을 하고 싶다 하는 말을 딱히 안 합니다. 아니, 어쩌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르나, 수다쟁이 요츠바가 혼자 신나게 말을 이어요.
이 대목에서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나한테 "아버지는 이담에 크면 뭐 할래?" 하고 묻는다면, 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가 이 물음에 대꾸를 할 때까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끝없이 묻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떤 말을 들려줄는지 궁금하니까 끝없이 묻지요. 나는 아이들이 묻는 말에 깊이 생각하고 곰곰이 헤아리면서 말합니다. 때로는 곧바로 말하다가 나중에 더 생각해 보고서 다시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만 무럭무럭 자라지 않고 어른도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아이 못지않게 어른도 몸이며 마음이 새롭게 자라니까요.
"왜? 무서운 꿈 꿨냐?" "꿈, 꿈은 꿨어. 두랄루민이랑, 어라? 까먹었어." (71쪽)
"이거 요츠바가 만들었니?" "응! 할머니 온다고 그래서!" "그랬니? 고맙다. 요츠바 마음씨가 참 곱기도 해라." (92쪽)만화책 <요츠바랑!>이 아니어도 우리 집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수수한 하루야말로 온갖 이야기가 흐르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달력이나 일기장에 오늘 하루 어떤 일을 했는가를 적바림하지 않으면 어영부영 잊으면서 지나가기 일쑤가 되지만, 달력이나 일기장에 오늘 하루 누린 기쁨과 재미와 보람을 가만히 적바림하면, 내 발자국은 어느덧 아름답고 알차며 신나는 삶이었네 하고 돌아볼 만해요.
아이도 꿈을 꾸고, 어른도 꿈을 꾼다고 할 수 있지요. 아니, 아이만 꿈을 꾸는 삶이 아니라, 어른도 꿈을 꾸는 삶이라고 느껴요. 어른으로서 나부터 즐겁게 꿈을 꿀 때에 아이들한테도 즐겁게 꿈을 꾸는 길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알려주면서 가르칠 수 있어요. 어른으로서 나부터 꿈을 즐겁게 꾸지 않으면, 아이들한테 아무런 꿈을 못 보여주고 못 들려주고 못 알려줄 뿐 아니라 못 가르치는구나 하고 온몸으로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