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는 군청과 주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지고 있다. 고령군청(대가야읍)과 고령향교 사이로 나 있는 등산로를 걸어 주산 정상을 넘은 다음, 계속 이어지는 능선을 걸으면 미숭산 정상까지 갈 수 있다. 그 사이 대략 1/4 지점쯤에 임도를 주행하는 차량을 위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가야대학교, 오른쪽으로 가면 중화리, 직진하면 미숭산으로 간다. 사진은 주차장에서 미숭산을 향해 오르다가 내려다본 중화1리의 풍경이다. 1597년 정기룡 장군이 일본군을 무찌른 둔덕(중화2리)은 왼쪽 능선과 멀리 보이는 호수(낫질못)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정만진
본래 읍내(邑內)는 지금처럼 군청 소재지 규모의 도회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대구읍성", "경주읍성" 할 때의 읍성(邑城)은 임금이 있는 도성(都城) 다음가는 큰 이름이었다. 읍은 현대의 시(市)에 맞먹는 지역 중심지였고, 부(府)였던 대도시들이 "서울시(1946년), 부산시(1949년), 대구시(1949년)"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해방 이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화자가 "읍내 간다." 하면 청자는 곧장 '시내(市內) 번화가에 간다는 말이군' 하고 알아들었다.
그렇지만 '대가야읍 중화리'는 이름만 읍내일 뿐 도회 중심의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행정구역상으로만 읍내이지 실제로는 한적한 산촌 마을일 따름이다. 주산과 낫질못(중화 저수지) 때문이다. 주산은 군청과 중화리 사이를 차단하고 있고, 낫질못은 주산 아래를 빙 둘러 걸어 마을로 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다. 부산과 오륙도 사이의 바다처럼 주산과 낫질못은 읍내와 중화리 가운데에서 난도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큰 못둑이 가로막고 있는 골짜기 속의 둔덕 둑 아래 우륵박물관 쪽에서 무심히 쳐다보면 낫질못 뒤에는 단 한 채의 집도 없을 듯 느껴진다. 못둑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이 제각각 산에 붙었으니 더 이상 길이 없으리라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저수지 왼쪽 벼랑에 떨어질 듯 도로가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답사자는 아무리 대단한 탐험가 기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못 뒤로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못 뒤 그 깊은 골짜기에서 둔덕전투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