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열전>(남재희 지음 / 메디치 펴냄 / 2016. 1 / 311쪽 / 1만6000 원)
메디치
그들 중에는 요즘 사람들이 알 만한 이름들도 있고 생소한 이름들도 있다. 1950년대 이후 인물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책은 4부로 나눠 남북관계와 관련된 인물들, 혁신정당과 관련된 인물들, 바른 언론을 위해 일했던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어 '언론인의 귀감이 된 거목들'이라는 제하에 조세형과 박권상을 '소신과 정치가 일치했던 행복한 정치인', '막후에서 역량을 발휘한 정치 논객'이라며 특별히 다루고 있다.
나는 <진보열전>에 소개된 인물들의 면면을 읽으며 '우익과 좌익' 혹은 '보수와 진보(혁신)'라는 개념에 대하여 상념에 잠기고 말았다. 차라리 혼란이 왔다. 물론 14명 중 변절자(?)는 없다. 모두 진보진영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몸을 바쳤던 '진보'라는 개념이 오늘날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회의에 가까운 상념에 빠지고 말았다.
저자만 해도 대학생 시절부터 진보 인사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당연히 기자로서도 조선일보(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진보적이었다), 서울신문 등 진보적 언론 매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정치는 여당에서 했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조경태 의원이 탈당을 했다. 이틀만인 21일 여당인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이렇게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절을 했다. 그는 야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낸 사람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여당인 새누리당은 보수 정당이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보 정당이다. 어떻게 생각(사상)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전 장관을 영입했다. 김종인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경제민주화', '창조경제'라는 프레임을 만든 사람이다. 어찌 보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경제통이 바로 김종인씨라고 할 수 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그보다 먼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까지 지낸 사람이다. 그 보다 더한 것은 12.12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국보위의 경제분과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번엔 야당에 들어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많이 헛갈린다.
흔들리지 않았던 진보주의자들, 본받아야계속되는 야당의 분열과 이합집산을 보며 '진보진영'이란 게 정말 있는지 그 실체가 궁금하다. 책에서 저자는 올곧은 진보인사들을 만난다. 그리고 개인적 소견을 곁들여 그들을 소개한다. 그가 첫 발을 디딘 기자로서의 삶이 진보인사들을 취재하는 것이어서 그의 곁에 진보인사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헬조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안몰이 정치 등 한 마디로 꿈을 갖기 힘든 때'라는 출판사의 덧붙임이 아니어도, 지금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든 혼탁한 시대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 H. 카의 역사관을 들어 책에 등장한 진보인사들을 되새겨 봄직하다.
책에 등장하는 14명의 진보인사들의 흔들림 없는 소신을 오늘날 논객들이나 정치인들에게 추천하고프다. 송남헌은 일제강점기 단파방송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다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에 임했고 후에 통일사회당 당무위원으로 통일운동과 현대사 연구에 매진했다.
박진목의 독립운동, 통일운동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통일대박'이란 말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고 행동하는 이가 필요한 시대다. 김낙중은 '통일독립청년 공동체 수립안'을 제시하고 관철을 위해 뗏목을 타고 임진강을 넘기까지 했다. 이런 돈키호테 같은 발상을 가진 진보인사가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차라리 이들이 그립다.
통일사회당을 만든 이동화, 민사당 당수 고정훈, 반유신 투쟁을 벌이며 통일사회당을 이끌었던 김철, 민추협 지도위원으로 신정사회당을 이끈 권대복, 3선 개헌을 반대하고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등에서 활동한 정태영. 이들의 올곧은 진보정신은 어떤 정권의 억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의 진보인사들이 본받아야 할 면면이 여기 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이 방송 저 신문을 오락가락 하는 언론인들은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송지영, 4.3사건 필화로 옥고를 치른 조덕송, <한겨레>를 창간한 송건호, 신군부 쿠데타 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임재경 등의 꼿꼿한 필치를 닮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