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씨는 대구에 사는 부모님을 군산으로 초대했다. 일터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네가 즐거워 보여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군산 남상천
어릴 때 미나씨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였다. 교실로 들어가서 친구들과 있는 걸 두려워하던 유치원생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친구들이 화나게 해도 따지지 않고 그냥 견뎠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활달해졌다. 밝은 친구들과 어울린 덕분이었다. 밖에서도 큰소리로 웃게 된 그녀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는 강제로 해야 하는 게 많았어요. 두 달쯤 되니까 답답해서 못 견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했고요. 저는 부모님한테 항상 지지를 받고 산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가 말리시는 거예요. '잘 하고 있다가 왜 엉뚱한 소리를 해? 좀만 지나면 적응할 거야. 남들도 다 하는 거야' 하면서요." 미나씨는 '내가 이상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니까 오후 11시까지 야자를 했다.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일이 많았지만 참아냈다. 학교라는 틀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주위의 권유대로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새로운 걸 창조하는 건축이나 사람들 삶에 보탬이 되는 특수교육에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주장하지 못 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만 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죠"당연하게도 사범대학은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다. 미나씨는 교생실습도 나갔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학생들을 보면 외로워 보였다. '이 교육 현장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임용고시 공부를 했다. 처음 본 시험에서는 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는 시험공부를 1년 더 했다.
"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만 살았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두려워했어요. 임용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맘먹었죠. 대학 다닐 때, 장학금은 받았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거든요. 그래서 수학 과외를 했어요. 다른 걸 못 해봤어요."스물다섯 살, 미나씨는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하고 싶던 일이었으니까. 영어회화 공부도 하고, 운동을 해서 살도 빼고, 여행도 갔다. 인형극도 해 봤다. 노인들이 사는 시설에 가서 봉사 활동도 했다. 영아들이 일시적으로 보호받는 센터에 가서 일을 돕고, 지체장애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곳에서는 일상생활 보조활동을 했다.
"뭔가 하고 싶다면 일단 너만 생각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은 없어."드라마 <미생>의 명대사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미나씨는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는 내려놓았다. 어머니와 수없이 부딪혀도 꿋꿋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며 6개월을 보냈다. 그런 뒤에야 숨고르기를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추려보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관심이 갔던 건축과 사회복지 분야의 책을 읽었다.
억지로 공부시키는 게 싫어서 턱까지 빠지던 수학강사미나씨는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한 사립 고등학교에 6개월 계약직 수학강사로 들어갔다. 면학 분위기를 강조하는 학교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엎드려서 잤다. 수업시간인데 들락날락 하는 학생도 있었다. 미나씨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는 게 힘들었다. 교단에 서 있는 게 외로웠다.
"학교 출근할 때마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아침마다 턱에서 뿌지직 소리가 나면서 반 정도 턱이 빠졌어요. 1-2분 있다가 이를 앙다물면서 집어넣었어요. 울면서요. 학생들한테 강제로 시키는 게 싫은데, 제가 그렇게 사니까 진짜 싫었어요. 사회복지대학원 입학을 앞두고는 학교에서 빠져나왔어요." 스물여섯 살 미나씨는 김해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생. 가진 돈은 얼마 없었다. '수학 과외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때에 학과 교수님이 "상담학회 행정일 하면서 학비 벌래?"라고 제안했다. 미나씨는 학회를 준비하면서 학점에 상관없이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그 일이 좋았다. 가장 큰 도움이 된 수업은 '집단 상담'. 함께 모여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들여다봤다. 그걸 얘기하고 푸는 과정에서 여러 학자들의 이론도 꼼꼼하게 읽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