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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영어 동요를 새롭게 듣고 배우면서 <장정일의 악서총람>(책세상, 2015)을 읽습니다. 2015년 12월 31일을 펴낸날로 해서 나온 두툼한 <장정일의 악서총람>은 소설가 장정일 님이 읽은 '노래책(음악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모로 보면 '노래책 독후감'을 그러모은 책이고, '노래를 다루거나 노래하고 얽힌 이야기가 흐르는 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장정일 님 나름대로 헤아리면서 풀어낸 책입니다.
장정일 님은 재즈를 몹시 좋아하지만 재즈가 아닌 노래에도 귀를 열려고 하는 몸짓으로 여러 갈래 노래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퍽 두툼한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참말 내(장정일)가 이 책을 다 읽었단 말입니까!' 하고 기쁨과 놀라움에 찬 외침말을 붙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도 장정일 님 말투를 빌어서 '내가 이 책(장정일 님 책)을 참말 끝까지 다 읽었단 말입니까!' 하고 슬그머니 외쳐 봅니다.
아이들만 영어 동요를 듣도록 하면서 몇 쪽씩 읽다가, 아이들이 깔깔깔 웃고 춤추는 모습만 어깨너머로 볼 수 없어서 함께 방바닥을 구르면서 춤추면서 웃다가, 아이들을 재우고서 조용히 읽다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살짝살짝 읽습니다.
그걸(일본 제국이 친구로서 독일을 지지한다) 수행하기 위한 단체가 유럽 거주 일본 외교관과 나치 간부들이 만든 일독회라는 문화 선전 단체였고, 안익태는 이 단체를 통해 일본의 음악 대사 역할을 했다. 바로 이것이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철저히 숨기고 싶은 전력이었고 … 평생 음악에 헌신했던 안익태는, 음악 경력 말년에 이르러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미하게 된다. (123∼124쪽)
<장정일의 악서총람>에는 몇 사람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를테면 마돈나하고 신디 로퍼하고 레넌하고 서태지가 곧잘 나옵니다. 이밖에 수많은 사람이 꾸준하게 나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구별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사람들을 다룬 노래책이 꽤 많으니까요. 한 번만 살짝 나오고는 더 나오지 않는 이름도 많은데, 안익태하고 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 나온 이야기'로 다시 읽으면서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입니다.
괴벨스하고 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서 장정일 님이 읽은 줄거리'로 거듭 읽으면서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바이올린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창현이라는 분하고 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서 장정일 님이 무릎을 치면서 새삼스레 되새겼다'고 하는 대목을 고요히 읽으면서 가만히 되돌아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늘 무엇인가를 '발명'할는지 모릅니다. 우리한테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찾아내거나 알아내야 해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을 보면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제 것으로 삼아서 '스스로 피아노를 배운' 아이가 나오지요. 장정일 님은 인문책하고 소설책하고 역사책만 읽으셨고 만화책은 하나도 안 읽으셨는데(이 책에서 다룬 책으로만 따진다면), <피아노의 숲>에 나온 아이는 아무한테서도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이 스스로 피아노를 쳤으니 '피아노 연주법'을 '스스로 발명'했다고 해야겠지요.
<순백의 소리>라는 만화책을 보면, 이 만화책은 '샤미센'을 켜는 청소년이 나오는데요, 이 청소년한테 할아버지인 분은 아무한테서도 악기 켜기를 배우지 않았어요. 만화책에 나오는 청소년한테 할아버지인 분은 혼자서 동냥밥을 먹으면서 스스로 샤미센 켜기를 익히고 가다듬었습니다. 그러니 그분도 '연주법 발명'을 했겠지요.
음악이 기록되고 연구의 대상이 된 이래 음악 연구를 지배해 온 것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225쪽)프로파간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괴벨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선전이 문화적이고 즐거운 오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전체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 1938년에는 69.4%까지 증가했으며,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독일 방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258쪽)<장정일의 악서총람>은 널리 알려진 음악가나 노래꾼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장정일 님이 좋아하거나 마음에 두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서태지하고 얽힌 이야기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어도, 정태춘·박은옥 같은 사람하고 얽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읽을 수 없습니다. 조용필 이야기는 몇 줄로 읽을 수 있어도, 김광석 이야기는 한 줄로도 읽을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굳이 모든 사람을 다루어야 하지 않고, 애써 모든 노래를 들어야 하지 않아요.
재즈를 듣건 팝송을 듣건 대중노래를 듣건 모두 스스로 좋아하는 노랫가락을 마주하면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나는 두 어린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는 거의 모두 어린이노래(동요)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도, 아이들하고 내가 함께 듣는 노래도, 참말 거의 모두 어린이노래예요. 때때로 재즈도 듣고 교향악도 듣고 '지브리 스튜디오 연주'도 듣습니다만,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노래는 어린이노래이지요.
그래서 나로서는 안익태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보다는 권태응이나 이원수 이야기가 궁금하고, 서태지 이야기보다는 백창우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그러나 소설 쓰는 장정일 님은 안익태 뒷이야기나 서태지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