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지배', '카리스마'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사회과학 용어를 정의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브리타니카
왜 박정희와 노무현일까. 그 해답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1세기 초반 교회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구체적 어원으로는 『일리아드』에서 '빛나는 베일을 덮은 사랑스러운 여신'으로 기술 되고 있는 카리스(Charis)를 그 어원으로 한다. 구약에서 나타난 카리스마는 고양된 영적인 은혜와 힘, 특정 개인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정의 된다. 정리하자면 당시의 카리스마는 신의 은총으로 얻은 '재능'이었던 것이다.
우선 베버는 지배를 "일정한 명령에 대하여 어느 특정한 인간 집단이 복종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를 "어느 개인의 신성함이나 영웅적인 힘. 또는 모범성에 대한 일상 외적 헌신과 이를 갖춘 개인에 의해 창조된 질서에 의한 지배"로 정의하였다. 정리하자면,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배 양식을 만들어 내는 아주 특별한 원천, 그것이 바로 카리스마인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박정희와 노무현 모두 카리스마적 요소를 분명히 갖추고 있었다. 박정희가 등장하던 시기는 2016년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서 '새로움'을 갈망하는 시기였고, 젊고 정권 이양을 천명했던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일정 부분 소구력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명암을 가지고 있는 산업화 과정 역시 성공했다. 물론 그 기반에는 일반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노고가 기반이 되어있지만, 그 총체를 상징하는 것은 '박정희'였다. 또한 그 죽음을 둘러싼 사건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점 역시 일반적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박정희는 꽤나 '비범함'을 갖춘 카리스마적 존재가 된 것이다.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고출신 판사, 부유함을 뒤로한 민주화 운동, 꼬마 민주당 잔류와 지역감정에 대한 도전, 국민경선을 통한 대역전극, 극적 대통령 당선, 탄핵, 탄핵 역풍, 그리고 그의 죽음. 모든 측면에서 노무현은 자신의 비범함을 입증하였고, 그 역시 '카리스마'적 존재로 남게 되었다. 지금의 정치판에 끼친 영향력으로만 따지자면 노무현이라는 존재는 박정희라는 존재 이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12년 18대 대선은 그 카리스마의 후계자들 간의 싸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싸움이었다. 한국 정치사의 양대 카리스마적 존재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 간의 전투였기에 18대 대선은 그 어떤 선거 때보다도 치열했다.
'왜' 박근혜였는가모두가 알듯이 2012년의 승자는 박근혜였다.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졌다. 도저히 질 수가 없었는데,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류 영화인 '레 미제라블'이 대선 패배 힐링무비로 통용되어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선 정국을 사회학적으로, 구체적으로는 '카리스마' 논의로 해석해본다면 위와 같은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박근혜 당시 후보는 자체적 '카리스마'를 구축하고 있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는 그것이 없었다. 문재인 후보 역시 자신의 카리스마를 입증할 일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유통될만큼 유명해진 일화는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당시 후보는 피습 후 병원에서 가장 먼저 했다고 알려진 "대전은요?" 발언과 MB와의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 새누리당 비대위 체제를 혁신적으로 구축하는 등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위와 같은 카리스마적 행위들이 능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 감성을 자극하여 자신의 권위를 제고시킬만큼 강력한 '한 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결국 박근혜 당시 후보는 '박정희의 카리스마'에 자신의 카리스마를 더해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다. 당시 시대정신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했음에도,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의 카리스마'에 더할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구축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기에 패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