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쥐똥나무 사장.
김영숙
"2013년에 만들어 올해 4월이면 만 3년입니다. 왜 '쥐똥나무'냐고요? 제가 어릴 때 작고 외소해서 별명이 쥐똥나무였어요. 예전에 '쥐똥나무'라는 제목의 일본 소설을 재밌게 읽기도 했고요. 법의학자가 쓴 책인데 시체를 해부하면서 범인을 잡는 줄거리였죠.
그런데 시체의 콧속에서 쥐똥나무가 자라고 있었어요. 그만큼 쥐똥나무의 생명력과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혔거든요. 이곳은 언더나 인디음악 등, 자기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이 주로 공연하는 공간이에요. 클럽 이름을 '쥐똥나무'로 지은 것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하지만 당시 이씨의 지인들은 애정 담긴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록 음악을 하거나, 듣는 사람이 찾는 이 공간에 좀 더 센 이름이나 영어가 섞인 이름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너무 약하다는 의견인데, 쥐똥나무 꽃말은 '강인한 마음'이예요. 쥐똥나무는 우리나라 토종나무기도해요. 중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 쥐똥과 연관돼 있어 더 좋았고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이름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많단다. 글쓰는 곳이나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착각해 인천작가협회 사람들이나 미술인들이 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골이 됐단다.
간절한 마음으로 배운 기타, 인생을 바꾸다
어릴 때부터 성악 등 음악을 전공하고 싶던 이씨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학원을 다닐 수도, 레슨을 받을 수도 없었다. 재수할 때 언니가 사 온 기타를 처음 만져봤다고.
"처음에는 기타를 거꾸로 잡을 정도였죠. 노래책에 기타 주법이 줄과 점으로 표시된 게 있는데 그걸 보면서 독학으로 3개월 죽도록 연습했어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기타만 치던 시절이었어요. 학원에 등록하려면 돈이 필요해 벌어야 했거든요."1980년대 후반이었던 당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한 달에 4만 원을 받았다. 커피 한 잔에 400~5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씨는 3개월간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해 커피숍에서 매일 30분 공연하고 월 8만 원을 벌었다. 몇 개월 하고나니 10만 원으로 인상됐다.
3개월 배워 무대에 서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는 "학원도 다녀야하고 용돈도 벌어야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물론 노래 실력은 기본적으로 있어서 어렵지 않았고요, 엄마 말로는 제가 어릴 때 말하기 시작하면서 노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라면서 "학원에 가려니 돈이 필요해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렀는데 오히려 학업보다는 노래만 부르게 됐어요, 가요를 부르다보니 성악을 할 수 없었고 돈이 쌓이니 유혹도 생겨 본격적으로 이 길로 들어섰죠"라고 답했다.
이씨는 통기타 가수로 오랫동안 솔로 생활을 했다. 통기타 가수들은 대부분 솔로다. 먼 지역만 아니면 불러주는 곳 어디든 돌아다녔다. 2001년에는 개인 앨범도 냈다. '기타하나 동전한잎'과 '촛불잔치'를 부른 가수 이재성이 기획·제작했는데, 그녀 표현을 빌리자면 '쫄딱' 망했단다.
혼자 노래하는 게 재미가 없어지고 다른 음악에도 관심이 생겨 10년 전부터는 록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장르가 다르지만 오랜 기간 가수로 활동하다보니 둘 다 되더라고요. 록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할 때 도움도 되고요. 다른 스타일의 통기타 가수가 되는 게 재밌습니다"그녀가 활동했던 밴드 이름은 '누나밴드'였다. 지금도 공연 요청이 오면 프로젝트팀으로 활동하는데, 밴드활동을 함께하는 후배들은 눈빛만으로도 교감이 가능하단다.
음악 감상은 클럽에서, 노래는 노래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