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실내 화분에 갑자기 꽃이 피었다면?

아들의 아르바이트... 조짐과 징조 그리고 현상

등록 2016.01.19 17:22수정 2016.01.1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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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영대는 영국 유학 중에 귀국해서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즘은 군에서 필요로 하는 수보다 입대를 원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 입대일 잡기가 만만치 않은 듯합니다. 기다림의 시간, 아들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강의·회의 등의 일정이 잡힌 날에는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에서의 아버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을 전제로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미리 정해진 정기적인 약속 못지 않게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불가피한 일이 종종 있곤 합니다. 그때마다 모티프원의 일을 아들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18일도 그런 사정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전날 불쑥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서울에서 온 아들은 그동안의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아버지, 생각해보세요. 갑자기 오라고 하시면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일이 있을 때 내 일을 우선해서 돕는 것을 조건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잖아?"
"하지만 그건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한해서죠. 이렇게 갑자기 빠지면 그 집에서는 얼마나 곤란하겠어요. 저는 알바라도 제가 확실하게 지키는 기준이 있어요."

"기준이라니?"
"만약 아빠를 도와야 해서 알바를 빠져야 하면, 전화로 말씀드리지 않고 미리 방문해서 책임자인 과장님께 직접 말씀드려요. 두 번 그랬더니 과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영대야, 직접 오지 말고 전화나 문자로 편하게 사정을 얘기해라'고….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전 출근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요. 하지만 5분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문자를 드려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은 아들의 메시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은 아들의 메시지 이안수

"좋은 습관이구나. 그런데 아빠의 걱정은 네가 시급 6000원 하는 알바를 하다 보면 네 인생을 시급 6000원짜리의 꿈으로 국한할까봐 그것이 두렵다. 노랑미술관의 이정호 대표님이 20년 전쯤 한 다국적 회사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담당 사장을 할 때 '서치 펌(Search Firm, 헤드헌터회사)'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데 그때 제시된 연봉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340만 원이었단다."
"무슨~, 알바비가 6000원이라고 6000원짜리 인생으로 꿈을 맞춰 꾸겠어요. 알바로 번 작은 돈의 소중함을 알아야지 큰돈을 값지게 쓸 수 있지요."


"영국에서의 아르바이트가 처음이었고 지금이 두 번째인가?"
"맞아요. 돈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적어도 그 회사에 확실하게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항상 연구한다고요. 영국에서도 테이크아웃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면서 식재료를 다듬고 칼질하는 것을 혼자 연습했어요. 그래서 12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가게를 열어야 하는 오픈도 한 달 만에 혼자 할 수 있었어요. 한국 나올 때 사장님 부부께서 많이 아쉬워하시면서 다시 영국으로 복학할 때 원하면 점장을 하라고 하셨어요."

"맞아. 열심히 하고, 잘하면 아르바이트신분에서 바로 매니저가 될 수도 있지. 알바든, 임시직이든, 정직원이든 혹은 직무의 등급이 일의 성실도를 훼손해서는 안 되지. 알바를 하면서 귀중한 것을 깨달았구나. 내가 너의 알바를 용인한 것은 네가 세상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세상을 그만큼 배웠으면 됐다. 알바 그만하거라." 
"아부지?"


세상에 허투루 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요청을 받고 모티프원으로 온 아들. 청소를 끝내고 저녁 아르바이트를 위해 서울로 다시 가야 한다며 집을 나서려는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영대야, 오늘은 네가 마친 모티프원의 베드 메이킹이나 공간의 리프레시 상태를 아빠와 함께 점검해보자."
"걱정 마세요. 청소가 벌써 10년째인데요…."

영대의 자신만만한 말과는 달리 아빠의 점검이 있을 때면 매번 지적 사항이 나오지 않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아들은 살짝 긴장하는 표정을 애써 숨겼습니다.

"베드메이킹에서 손님의 피부가 이불에 닿지 않도록 시트의 중심에 이불을 놓고 완전히 이불을 감싸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2%로 부족하다. 손님이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도 시트와 이불이 분리되지 않게 하는 것은 위생의 문제이지만,  손님의 시각적·심리적 만족을 위해서는 시트와 이불을 팽팽하게 마무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 바람을 가득 담은 풍선처럼 팽팽하다면 누군가가 손을 짚기만 하더라도 흔적이 남으니 청결상태를 손님이 한눈에 알 수 있어."
"알고 있어요. 이만하면 팽팽하지 않나요?"
"하지만 모서리의 접힌 부분이 부풀어 있구나."

이렇게 아들과 각 공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적지 않은 지적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늦지 않게 서울로 가야 한다는 아들을 붙잡고 기어코 마무리 잔소리를 마쳤습니다.

 겨울에 핀 개나리꽃을 보았다면 기뻐하는 대신 그 꽃의 계절을 잊게 한 책임에 대해 반성해보아야할 일이다.
겨울에 핀 개나리꽃을 보았다면 기뻐하는 대신 그 꽃의 계절을 잊게 한 책임에 대해 반성해보아야할 일이다. 이안수

"영대야! 방안에 나사가 하나 떨어져 있다면 어떻게 하겠니?"
"위험하니 얼른 치워야지요."

"치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식이지. 너는 그 나사가 왜 그곳에 있는 지를 알아내야한다. 장의 경첩에서 빠졌을 수도 있고 콘센트의 두 나사 중에서 하나가 빠졌을 수도 있다. 나사가 빠진 경첩은 결국 나중에 문이 뒤틀리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나사가 하나 빠진 콘센트는 결국 헐거워져서 벽의 홈에서 빠질 수도 있겠지.

실내와 실외의 기온차가 심한 이 겨울에는 아무리 밀폐가 잘된 이중, 삼중창이라도 유리창 아래에 결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한 방에는 결로가 생겼고 다른 방에는 결로가 생기지 않았다면, 결로가 생기지 않은 방의 창 기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외 겉면의 유리와 실내 유리의 표면 온도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는 찬바람이 밤새 실내로 들어왔다는 증거란다.

만약 복도 한 가운데 바닥에서 물 한 방울 발견했다면 찻잔을 옮기다 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면 반듯이 천장을 올려다봐야 한다. 그 한 방울은 며칠 전에 옥상에 내린 눈이 녹은 물일 수도 있다. 물은 바늘끝 만한 틈을 타고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그 물이 어디로 갈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크랙과 구배 및 삼투압의 차이에 따른다. 그 물이 전선 구멍을 타고 마침내 복도의 한 가운데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물 한 방울은 옥상의 방수가 수명이 다 됐다는 걸 알려주는 게지.

실내 화분의 화초가 갑자기 꽃을 피웠다면 그것이 경사를 상징하기는 어렵다. 실내에 기온이 적정하지 않거나 아주 오랫동안 그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잊었을 수 있다. 화초는 생명의 위기를 느낄 때 최후의 방법으로 빨리 꽃을 피워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자신을 버리는 비장한 결행이란다.

겨울에 핀 벚꽃과 개나리꽃을 기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계절을 잊게 만든 가해자가 내가 아닌지를 반성할 일이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도 네가 집 모퉁이 너머 10m쯤 전에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원에 있는 해모가 멀리 모습을 보인 너를 알아보고 먼저 일어나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를 힘차게 흔들기 때문이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도 모퉁이 뒤의 너를 볼 수는 없지만 해모의 꼬리를 볼 수는 있거든.

이렇듯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사전에 길흉이 생길 동기를 미리 드러내 보인다. 그것이 조짐이고 징조이다.

자연의 모든 변화나 사회적인 큰 변혁도 마찬가지이다. 곧 뒤따라 나타날 일들에 대해 그 본질을 미리 외면에 나타내어 보여준단다. 그것을 현상이라고 하지.

너는 네 발밑의 작은 나사 하나나 물방울 하나를 아무렇게나 대하지 말거라. 사물이 이러할 진데 민감한 사람과 뭇 생명들은 사전에 얼마나 많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겠나. 사람의 눈물 한 방울은 복도에 떨어진 물 한 방울보다 훨씬 복잡한 이면의 대외적 표현임을 염두에 둬라. 세상에 허투루 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아르바이트 #조짐 #징조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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