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범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한 지 3년 만에 일본과 손을 잡았다. 사진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왕 히로히토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1945년 8월, 미국은 자국 입장에서 볼 때 IS보다 더 얄밉고 더 강력한 적을 상대로 원자폭탄 두 방을 투하했다. 오죽 미웠으면 핵폭탄 두 방을 떨어뜨렸을까. 미국은 일본을, 세계를 상대로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전범 국가로 취급했다. 그래서 핵 공격까지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미국이 3년도 안 돼 일본에 대한 태도를 확 바꾸었다.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삼을 조짐을 보인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는 장개석(장제스)이 이끄는 중국 국민당을 내세워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퇴가 확실시되자, 미국은 1948년 1월 '일본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육군장관 로이얄의 성명을 발표했다. 소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과 동맹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어제까지 전범국으로 취급했던 상대방을 갑자기 동맹국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IS도 흉내 낼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한 일본까지 용서하고 손잡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어느 날 갑자기 IS를 국가로 승인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IS와 싸우는 것이 더 이상 무용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미국이 지금처럼 열심히 싸울 수 있을까? 지난 세기에 미국이 국제법상의 국가승인제도를 어떻게 운용했는지 확인해보면, IS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내일이라도 당장 바뀔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제법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국가승인의 요건은 '영토·국민·정부를 갖춤으로써 국내법상의 국가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과 '국제법을 준수할 의사 및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건을 갖춘 정치집단이 있으면 국가로 승인할 수 있다는 게 국제법 학계의 견해다.
하지만, 그런 학설에 맞춰 국가승인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미국은 국제법상의 요건을 살펴가며 국가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승인요건이 미비한 상대방한테도 국가승인을 부여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객관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도 국가승인이 시기상조로 이루어지는 것을 국제법학 용어로 '상조(尙早)의 승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외관계에서도 상조의 승인이 있었다. 1903년 파나마 승인이 대표적이다.
파나마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만나는 지점이다. 파나마 오른쪽에는 콜롬비아가 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파나마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면,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뚫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파나마는 독립국이 아니었다. 콜롬비아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한테서 파나마 지역의 이용권을 얻고자 했다. 미국은 1천만 달러의 일시불과 연간 25만 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가 더 많은 조건을 내세웠기 때문에 협상이 용이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파나마 지역 주민들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이런 경우에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군의 진압작전을 지켜보면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할 수 없고 반란군이 국가 형태를 갖추었을 때, 반란군을 국가로 승인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행동은 성급했다. 상조의 승인을 했던 것이다.
파나마 반란군은 1903년 11월 3일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군이 진압작전을 개시하기도 전에 파나마를 국가로 승인했다. 11월 6일, 미국은 파나마를 상대로 사실상의 국가승인을 했다. 일시적·잠정적이라는 전제로 사실상의 승인을 했던 것이다.
사실상의 승인 제도는 19세기 초반에 중남미 국가들이 스페인·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을 선언하는 분위기에서 고안했다. 이때 세계최강인 영국은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방안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실상의 승인이다. 잠정적으로나마 승인해준다고 함으로써 독립군 쪽을 만족시키고, 잠정적으로만 승인해준다고 함으로써 식민본국을 만족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상의 승인이 파나마 반군의 독립선언 3일 만에 미국 측에서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파나마 반군과 콜롬비아 정부 양쪽을 다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일주일 뒤에 해소되었다. 미국이 파나마 반군을 국가로 인정하는 법률상의 승인을 해줬던 것이다. 반군한테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자 콜롬비아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미국이 파나마에 대해 상조의 승인을 해준 것은 콜롬비아 정부가 요구한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미국의 뜻대로 파나마운하가 건설되었다.
당근을 얻는다면, IS를 치켜세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