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신춘문예 당선 소설이라고?

신문 독자들 우습게 보는 잘못된 선택

등록 2016.01.17 18:36수정 2016.01.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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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이게 신춘문예 당선 소설이라고?"


1월 7일 워싱턴 근교 한국 수퍼마켓에서 구한 조선일보에서 2016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을  읽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상식의 속도"라는 제목이 달린 이 작품은 제목부터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세 번을 읽어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은 초반 도입부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단편소설은 처음 5분의 1 정도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확대 해석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가 가능하다고 주장한 이론물리학자 미구엘 알쿠비에르(현존 인물)의 증명 안된 이론 'Alcubierre metric'(작품엔 metric을 Matrix라고 잘못 씀)의 어색한 해설 그리고 이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최초의 초광속 우주비행체가 29세기에 외계인들에게 격추당했으나 한 승무원이 음성기록을 남겼다는 얘기 등등, 일반 독자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The Brave라는 이름의 이 우주선은 2841년에 만들었다고 써놓고 "현재"는 26세기라고 하는 오류도 범했다).

이 도입부 이상 더 읽어내려간 독자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도 더 읽기를 포기했다가 호기심으로 끝까지 읽어보았으나 느닷없이 삼국지 인물 제갈량의 동성애 얘기도 전체 작품 분량의 5분의 1정도가 나오는 등 갈수록 점점 더 황당해졌다. 한국의 어린이용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얘기도 나오는가 하면 뒷부분의 거의 전부는 아벨 로디리게스라는 21세기형 인간 이야기가 차지했는데, 도대체 작품의 주인공도, 일관된 이야기도 없는, 재미없는 이야기만 잔뜩 써놓았다.

차라리 요즘 다시 뜬 공상우주탐험 얘기 <스타워즈>(Star Wars) 비슷한 모험담을 창작했더라면 그런대로 읽힐 터인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횡설수설 한다. 이 작품을 다 읽어도 무얼 읽었는지 남는 게 없다.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동성애로 오해받은 남자가 부모에 의해 정신병동에 끌려가 늙은 의사의 이상한 치료방법으로 치유가 되어 나온다는 짧은 우스갯소리 한 토막뿐이다. 세 번을 읽었지만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심사평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읽어 보았더니 두 심사위원(김인숙, 성석제/모두 소설가란 칭호가 붙어있다)은 아래와 같이 극찬만 했다.

"당선작인 원재운의 '상식의 속도'는 혜성처럼 뜨겁고 거침없이 '상식밖의 속도'로 내달리는 문제작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문장과 장르와 시공을 자재하게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 이야기의 근원적인 힘을 생각하게하는 서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소설문학의 땅을 굴착한다. 오늘보다 내일의 폭발과 섬광이 더 기대되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다."              


이 심사평 자체도 이해가 안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을 "팽팽하게 긴장된 문장"이라고 하고,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 모아놓은 걸 "장르와 시공을 자재하게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이라고 격찬한다('자재하게'는 '자유자재'란 뜻인가?).

28세 조선일보 기자시절 신춘문예소설(1970년 신춘문예 상금 중 최고액을 내건 대한일보에 응모)에 당선되었고, 두 권의 작품집을 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일반 독자들도 이해할 수없는 작품이라고 감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이 당선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구시대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심사위원들은 말 할지 모른다. 그때와 지금은 글쓰는 스타일이 다르고 주제도 다르다고 그들은 말할지 모르지만, 훌륭한 문학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프랑스의 단편소설 대가 모파상(<진주 목걸이> 등)과 영국의 장편소설 대가 디킨스(<올리버 트위스트> 등)의 작품은 지금도 재미있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김동리의 <감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는 어느 시대 사람이 읽어도 받는 감동은 똑같을 것이다.

조선일보 2016년 단편소설 당선 작가는 물론 두 심사위원과도 나는 일면식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신춘문예가 어쩌다 이런 이상한 글을 단편소설 당선작으로 뽑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단편소설은 이렇게 써야 당선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내가 이 당선작을 이해할 만한 지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이 소설(?)을 쓴 사람과 이것을 당선작으로 뽑은 사람들이 나보다 한 수 위에 있는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시(詩) 당선작도 무슨 소린지 알쏭달쏭

이번엔 시(詩) 당선작 "생일축하해" (안지은 작)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심사평을 읽어보니 이 작품이 가장 덜 난해한 시라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시도 이해하기 어렵다. 시는 다음과 같다.

생일 축하해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시간 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데 그 약속을 어기고 작가 자신만 알게 씌어져 있다.

"네게선 물이 자란다"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때에 /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챘지 / 문장의 바깥에 서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등이 보이는 오늘 /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 내가 살아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 기일 축하해"란 말들은 나같은 보통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시인 칭호가 붙은 정호승, 문정희)은 "안지은의 <생일 축하해>는 당선작이 될만큼 작품으로서 우수성이 탁월 했다기보다는 소통 가능한 시가 그래도 이 시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삶과 죽음을 동질관계로 인식한 바탕에서 쓴 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일상의 순간에 만나 깊은 애증의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라는, 기일이 생일이고 생일이 바로 기일이라는 이 역설적 인식은 죽음을 도외시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 해설도 소통이 안된다. 소설도 그렇지만 시는 누가 읽어도 쉽게 그 뜻이 이해되어야 좋은 시다. 그런데 요즘 시라고 쓴 것들을 보면 마치 간첩 암호 같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쓴 사람 자기 밖에 모를 소리를 늘어 놓기 때문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진달래''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로 끝맺는 천상병의 '귀천' 같은 시들은 가방끈의 길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왜 요즘의 자칭 타칭 시인들은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일까? 김소월이나 천상병 같은 시인들이 요즘 한국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에 응모하면 예심에서 탈락할 것이 뻔하다. 현대 한국문단에서 시를 심사한답시고 버티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우리나라 시를 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 한국 시인들이여, 제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집어치우고 아름다운 우리 전통시로 돌아가기 바란다.

한국문단은 문예창작과 출신들만의 잔치판?

끝으로 한마디 사족(蛇足)을 달자면,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와 단편소설 당선자가 우연히도 모두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땐 문창과가 없었다.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쓰는 기법을 가르치는 학과인 모양인데, 그런 건 누가 가르칠 필요가 없다.

그 방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몇편 읽어보면 대충 그 작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좋은 작품 쓸 자질이 없다고 보면 된다. 4년 이상 대학에서 문예창작법을 공부하느니 그 기간에 다른 학문 분야도 섭렵하고 또 사회생활 경험을 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 문학은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문단이 어느 대학 문창과 출신이냐에 따라 파가 갈라지고 신춘문예심사위원과 당선자도 그 파벌에 따라 결정된다는 미확인 소문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던데,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문단과 신춘문예가 문창과 출신 그들만의 잔치라면 한국문단엔 미래가 없다.
덧붙이는 글 조화유 시민기자는 미국 거주 작가이며 영어교재저술가이다.
#신춘문예 #상식의 속도 #조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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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후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 중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흉일"당선. 미국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 역사학과 연구조교로 유학, 한국과 미국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연구 후 미국에 정착,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을 출판. 중국, 일본서도 번역출간됨. 소설집 "전쟁과 사랑" 등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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