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명대사가 승군들을 이끌고 전투를 치르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로, 대구 임란의병관 게시물이다. (오른쪽) 사명대사 초상으로, 동화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국가 보물이다.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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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누리집은 "세계 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입니다."하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동화사에는 문화재들이 많다.
동화사 경내를 잘 둘러보려면 봉황문 쪽에서 들어가야 한다. 예전에 동화사를 드나들던 사람들이 즐겨 이용했던 길이다. 지금은 주차 편의 때문에 식당가 쪽으로 들어가는 방문객들이 조금 오르막을 걷더라도 봉황문으로 입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보물 243호인 마애여래좌상을 감상할 수 있다. 답사 순서를 적시해보면 아래와 같다.
1. 봉황문 마애여래좌상/보물 243호 2. 통일대불 3. 당간지주/보물 254호 3. (성보박물관) 사명대사 초상/보물 1505호 보조국사 지눌 초상/보물 1639호 아미타회상도/보물 1601호, 영남치영아문 현판 등 * 동화사 누리집의 사명대사 초상 소개 : 전국에 있는 20여 개의 사명대사 진영(眞影) 가운데 동화사에는 가장 오래된 사명대사 진영(보물 제1505호)이 남아있다. 이 진영은 179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치켜 뜬 눈과 큰 코, 큰 귀 등 뚜렷한 이목구비에 긴 수염을 한 유정이 흰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친 채 의자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있는 모습에 위엄이 넘친다. 4. 부도/보물 601호 5. 금당암 동서 3층석탑/보물 248호 * 금당암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 6. 봉서루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衙門) 현판 7. 대웅전/보물 1563호, 목조약사여래좌상/보물 1607호 8. 극락전/유형문화재 11호 9. 조사전(고승들의 초상)⇢ 심지대사 나무 10.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44호, 3층석탑/보물 247호 11. (중턱까지 등산) 염불암 청석탑/유형문화재 19호,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유형문화재 14호 12. (정상까지 등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유형문화재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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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와 남지장사는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1544~1610)가 대구에 남긴 임진왜란 유적이다. 1595년부터 동화사에서 활동했던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중 이 절을 영남 지역 승병의 총본부로 사용했다. 대웅전 앞 봉서루 뒷면 벽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衙門)'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승군은 다른 말로 치군(緇軍)이라고도 한다. 치(緇)가 승려들의 옷을 뜻하는 한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남치영아문은 '영남 지역에 설치된 승려 군영의 문'을 의미하고, 이 현판이 봉서루에 걸려 있는 것은 동화사가 임진왜란 중 영남 지역 승군 본부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봉서루에 지금 걸려 있는 영남치영아문 현판이 사명대사 때에도 걸려 있었던 진품인 것은 아니다. 원품은 동화사 경내 성보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성보박물관의 진품 현판에서 받는 뭉클함도 대단하지만, 봉서루 벽의 복사본을 바라보는 일도 그와는 또 다른 감회를 맛보게 해준다. 건물에 달려 있는 현판을 보노라면 임진왜란 당시 이곳 동화사에서 승병들이 창을 잡고 훈련하는 풍경이 생생하게, 눈물겹게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성보박물관에는 사명대사가 의병대장 인장(印章)으로 썼던 영남도총섭인(嶺南都總攝印), 승군을 지휘할 때 불었던 소라나팔, 비사리 구시(나무로 만든 밥통) 등도 보관되어 있다. 당연히, 동화사에 가서는 성보박물관을 꼭 찾아보아야 한다.
동화사 누리집은 '1606년(선조 39) 사명당 유정(惟政)대사가 (동화사를) 중창'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웅전 왼쪽 옆 조사전에 들면 사명대사의 진영(眞影)을 볼 수 있다(물론 보물 1505호인 진품은 성보박물관 내에 있다). 조사전(祖師殿)은 어떤 사찰의 조(祖)상과 같은 대사(師)를 모시는 집(殿)이다. 즉, 동화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중 승병대장으로서 머물렀던 시기와, 절을 크게 중창한 일을 기려 그를 조사전에 모시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