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실을 증언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용수 할머니
대학생 겨레하나
"저는 열다섯 살에 끌려갔습니다. … 죽을 뻔한 일을 몇 번이나 당했습니다. 저는 엄연한 피해자입니다."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발족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당시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의 겪은 피해 사실을 다시 한 번 증언하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잔인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세상에 알린 지 24년이 지났는데, 그 피해가 생긴 지 70년이나 지났는데, 어째서 아직 그 사실을 아프게 또 이야기해야만 하는지 화가 났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합의를 마쳤다고 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합의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강제성 인정, 국가배상, 후속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민간단체가 설치한 소녀상 이전 가능성까지 거론됐습니다.
할머니들이 해온 20여 년의 싸움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지요. 일본대사관 앞에서 목 놓아 외쳤던 사죄요구는 '대리사죄'로 끝이 났고, 10억 엔에 소녀상이 거래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해결'이란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또다시 일본에 우리의 자존심을 내주었습니다.
관련 소식을 듣자마자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동아리 '대학생 겨레하나'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위안부 합의의 진상을 알려야 했고, 소녀상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국가가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211차 수요시위가 끝난 직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211차 수요시위 직후,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