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2세 동상.룩셈부르크 대공이었던 그는 룩셈부르크에 진정한 독립을 가져왔다.
노시경
오픈 마켓 앞, 광장을 시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광장 동쪽에 우뚝 선, 푸른빛이 신비롭게 감도는 기욤 2세(guillaume ll)의 기마상이다. 마르고 키가 큰 체격이었다는 기욤 2세는 동상에서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게 만들어졌다.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군인으로 용맹을 떨쳤던 그의 성격은 동상에서도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태어난 그는 네덜란드 국왕 겸 룩셈부르크 오란예-낫사우(Oranje-Nassau)가의 대공작이었다.
정작 이 동상을 보면서 헷갈리는 것은 그의 이름이다. 룩셈부르크에 와서 보니 원래 '기욤'이라는 이름은 '빌럼(Willem)'을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이고,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서는 기욤 2세를 빌럼 2세(Willem II)라고 부른다. '빌럼'은 영어로 하면 '윌리엄(william)'으로 표기된다.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공용어로 함께 쓰이는 룩셈부르크에서는 이름 표기도 이렇듯 복잡한데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룩셈부르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욤 2세 동상 바로 옆 지하주차장 공사판에는 노란 가림막이 길게 세워져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동상의 내력을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로 설명해 놓았는데, 이 설명을 보면 동상은 1884년에 세워졌다. 기욤 2세에 의해 1841년에 첫 민주주의 의회가 생김으로써 타국의 통치에서 벗어났고, 1848년에는 그가 룩셈부르크의 근본적인 자유주의 법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동상을 만든 것이다.
기욤 2세에 의해 룩셈부르크는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룩셈부르크 사람들이 네덜란드 왕으로서 룩셈부르크를 지배했던 기욤 2세를 기리는 것은 기욤 2세가 룩셈부르크에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자치권을 주어 실질적으로 룩셈부르크를 독립시켜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