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세워진 소형 맥주 제조장, 바이제하우스.
허시명
우리는 이들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주와 맥주, 막걸리와 맥주의 각을 세워, 맥주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외국 자본은 우리의 시장과 입맛을 고스란히 가져간다. 와인은 지역과 기후의 영향을 받지만, 맥주는 필요한 원료를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고, 훌륭한 기술을 얼마든지 접목시킬 수 있다. 그런 시도가 한국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젊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경리단길에서 시도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경계가 없어진 기호식품을 두고, 어떤 문화를 더할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막걸리처럼 우선 맥주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맥주는 다양한 제조용 키트가 개발돼 있고,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바람을 일으킨 것도,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는 마니아들의 출현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들이 집에서 맥주를 만들다가 공방을 만들고, 여기서 분화돼 맥주바나 소형 맥주 제조장을 만드는 것으로 성장해갔다. 대자본만이 맥주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취미 삼아 맥주를 빚던 이들이 생산자가 돼, 소비자의 입장에서 맥주를 빚으면서 맥주 문화가 풍성해졌다.
우리에게는 보리밭이 있다. 보리가 있으면 보리술이 존재할 명분도 있다. 한때 남도에서 맥주보리인 두줄보리를 재배하고, 이를 수매해 맥주 회사에 공급한 적이 있다. 맥주회사에서는 대량 생산하는 맥주의 고른 맛을 낼 수 없다면서 꺼렸지만, 국내 보리를 수매하면 맥아 수입에 혜택을 줘서 구매에 응했었다.
하지만 이런 제도도 사라지자, 남도에서 맥주보리 재배 지역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보리밭이 없어진 건 아니다. 소통의 공간이 사라진 것일 뿐이다. 소통의 공간은 보리가 움트는 겨울 들판의 주인들, 즉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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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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