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출하파트에 일손이 부족해 지원을 가면 컨테이너 가득 제품을 직접 손으로 옮겨 싫었다. 한겨울에도 컨테이너 하나 작업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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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군대를 가는 걸 대신해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선택했고 35개월간 2개의 중소기업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근무했다. 복무만료를 6개월 남겨두고 강원도 삼척에 있는 23사단 육군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이등병'의 계급으로 소집해제됐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현역을 다녀온 사람들이 시샘어린 말투로 산업기능요원 출신들을 무시하곤 했다. 물론 그들이 힘든 군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사회에서 따뜻한 밥 먹으면서 자유롭게 지냈다. 하지만 그 어떤 일에도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 산업기능요원이 되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힘들다. 병무청에서 각 사별로 정해준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 일부 회사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인원 제한을 이용해 소위 말하는 '희망 고문'으로 어린 친구들을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밀어넣기도 한다. 그렇게 부려먹고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이라도 시켜주면 다행인데 결국 산업기능요원 편입을 시키지 않고 군대를 가게 만드는 일도 더러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산업기능요원에게는 '최저 임금'을 적용했다. 나름 자격증을 보유한 고급 인력들인데 최저 임금을 주고 임금 인상을 시켜주지 않아도 최소 3년간은 이직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한 달에 잔업을 100시간을 채워도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100만 원이 채 안 됐다. 군대와 달리 아무런 보급품 없이 사비로 생활을 해야 하는 산업기능요원들은 나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군대를 가면 계급이 올라갈수록 '고참'이 된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생활이 조금씩 편해진다. 물론 그래봐야 군대지만 말이다. 반면 산업기능요원은 편입이 된 그 순간부터 복무 만료가 되는 그 순간까지 말단 사원이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회사의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서 해야한다.
이렇듯 산업기능요원으로써의 생활도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역들이 가질 수 없는 '자유'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가끔 내게 '다시 태어나도 군대 안 가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할 거냐?' 묻기도 하는데 내 대답은 언제나 'Yes'다.
추운 겨울날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강원도 삼척에 있는 23사단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겨우 4주 들어가는데도 마음이 싱숭생숭했고 입소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비로소 입대하는 친구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다.
입소 첫날부터 퇴소하는 그날까지 달력에 빨간색 X표를 해가며 집으로 돌아갈날만 기다리며 살았다. 그리고 퇴소하는 날, 좋지도 않은 그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자유를 되찾았다는 생각에 너무 신나 어쩔줄을 몰라 했다.
처음 산업기능요원이 됐을 때 가끔 선배들이 '며칠 남았냐?'라고 장난스럽게 물으면 '천…, 칠십사 일 남았습니다'라면서 1000일이 넘게 남은 복무기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어느새 나는 복무만료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말년'의 모습이 돼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출하검사실 후배를 몇 달간 열심히 가르친 덕분에 나의 말년은 조금 수월하게 지나갔다. TV와 CCTV를 생산 하던 우리 회사는 CCTV 생산이 중단됐고 이제 오롯이 TV 라인만 가동됐다. 그 덕에 동생이 혼자서 검사실 업무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나는 간간히 동생과 함께 일을 하면서 다른 부서 일손이 모자란 곳에 지원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 제일 지원가기 싫었던 곳은 바로 '출하파트'였다. 출하파트는 회사 도크장(트럭에 짐을 수월하게 실을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으로 컨테이너가 들어오면 만들어진 제품을 컨테이너 안에 적재를 해서 물건을 내보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회사에서 제품이 생산돼 나와 창고에 적재가 될 때는 팔레트(한 번에 여러 대의 물건을 쌓아올려 지게차로 옮길 수 있게 만든 판)에 올려 지게차로 이동시켰다. 컨테이너에 물건을 실을 때는 팔레트 없이 전부 손으로 물건을 적재해야 했다. 컨테이너 하나 작업을 하고 나면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출하파트 지원을 다녀 오면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기도 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 같았던 산업기능요원 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