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영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방죽샘. 당시 수군들이 먹는 물로 이용했다는 우물이다.
이돈삼
이순신이 벽파진으로 옮겨가는 사이, 남도 이순신길 조선수군 재건로는 우수영을 거쳐 진도대교로 간다. 우수영은 전라우도 수군절제사가 주재하는 병영이 있었다고 붙은 지명이다. 관할구역은 해남과 진도를 비롯 나주, 영광, 함평, 무안, 영암까지였다. 어란진, 고금도, 신지도, 목포진, 법성포, 흑산도 등 19곳을 속진으로 관리했다.
우수영성도 장대했다. 성의 영역이 남북 10리, 동서 5리에 이르고 석축의 둘레도 3843척이나 됐다. 성터의 흔적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방죽샘이 있다. 당시 수군들이 먹는 물로 이용했다는 우물이다. 정교하게 깎은 돌기둥을 육각형으로 세워 튼튼해 보인다.
암반에 세워진 명량대첩비도 만난다. 1688년(숙종 8년) 전라우수영의 동문밖에 세웠던 그 비석이다. 비석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명량대첩비가 강제 철거돼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해방 이후 주민들이 다시 옮겨 왔다. 명량대첩비 주변이 당시 우수영의 성터였다.
누각 부근에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의 흔적도 조금 남아있다. 바닷가에 접한 우수영성의 남쪽은 크고 작은 돌로 틈틈이 쌓은 석성이다. 북쪽은 흙으로 빈틈없이 쌓아올린 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