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8월 25일 '무박 4일' 마라톤 협상을 마친 당시 북측 김양건 당 비서.
통일부 제공
4차 핵실험이 당혹스러운 이유지난 6일 북한이 자행한 핵 실험은 그야말로 '깜짝 뉴스'였다. 핵 실험 이후 며칠간 국제사회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각국 언론을 장식한 '기습'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표현한다. 북한은 핵 실험 계획을 타국에 통보하기는커녕 실험을 카드로 하는 별다른 외교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관련된 발언이나 예고도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지난 1일 신년사조차 김정은은 '핵' 관련 언급을 피했다. '정말로 수소폭탄 실험이었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부터 출발해 '왜 하필 지금 실험을 했고,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 여러 가설만 떠돌고 있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정말 수소폭탄이었는지, 김정은 생일(1월 8일) 축하용이었는지'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핵 실험이 왜 기존 핵실험과 달리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지느냐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1차~3차 핵 실험에 담긴 북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 핵 실험은 대개 '외교관계 악화→미사일 실험→핵 실험'이라는 공식(?)에 따라 진행되었고, 북한은 이를 통해 대내적 결집과 대외적 경색국면 돌파를 꾀했다.
지난해 10월,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일 당시 "미사일을 쏘되 핵 실험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분석이 쏟아졌던 것도 공식이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실험을 통한 국제외교전이 이와 같은 흐름에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사전대응을 준비하는 한편 실험 후 대북제재와 같은 강경수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핵 실험은 과거의 흐름과 전혀 합치되지 않으며, 무엇을 의도로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국에 대한 불만과 대내외적 독립의지를 표출했다는 식의 원론적 분석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기존의 틀을 깨버린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깨면서까지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첫째로 최고 승인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 이른바 '온건한 사람들', 즉 북한의 외교에 합리성을 보태주던 진보적인 사람들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언제나 그래 왔듯 모든 분석은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자의 시선에 머물러 있다.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북한은 뭉뚱그려진 단일한 집단 내지는 몸뚱어리처럼 포착되고, 관심은 '그 몸뚱어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로 수렴된다.
핵실험에 대한 분석이 한결같이 '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외부자의 '왜'라는 질문은 '목적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한다.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배제되고, 분석이 북한 사회의 외피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이는 여태껏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논의가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 중국의 태자당과 공청단 등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처럼, 한 나라의 정치적 이념 지평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북한의 정치적 이념 지평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령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북핵 위기와 같은 결정적 사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나 남북관계가 유지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발전적일 때 그들은 북한에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고, 이에 힘입어 수령은 변화의 추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차 핵실험이 벌어진 지금, 북한의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디 있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2013년 처형된 장성택과 2000년대 들어 공식적으로 세 번째로 교통사고를 당한 김양건이 언뜻 생각나는 이유다(북한에서의 교통사고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이 앞으로도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든 협력대상이든, 핵 문제가 남북 사이의 모든 문제를 집어삼켜 버리는 블랙홀이 된다면 분단의 괴물은 한반도를 끊임없이 지배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통일은 전쟁으로밖에 이뤄질 수 없는 '죽음의 성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안에서는 남북의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에도 우리와 생각은 다를지언정, 함께 남북 평화를 향해 걸을 수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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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폭탄'보다 충격, 북한 '진보 인물'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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