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나는 아빠표 카레, 덩달아 나도 어깨가 으쓱

[내 인생의 카레 ①] 늦둥이 딸을 위해 카레 만드시던 아빠가 그립습니다

등록 2016.01.12 16:19수정 2016.01.12 16: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저녁에 카레 해 먹을까?"
"그래, 엄마. 야채는 조금만 넣고 고기는 듬뿍 넣어줘!"


변변한 반찬이 없을 때, 방학 등의 이유로 아이들끼리 한두 끼니를 차려 먹어야 할 때, 제가 즐겨 하는 요리 중 하나가 바로 '카레'입니다. 적당히 만들어 놓으면 따로 데우지 않아도 밥통 속의 밥과 함께 쓱쓱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아이들끼리의 한 끼 식사로 그만이거든요.

야채라면 질색을 하며 일일이 골라내거나 야채만 남기는 아이들도 카레 속에 들어간 당근이며 양파, 감자는 골라내지 않고 잘 먹기도 하고요. 카레는 저와 아빠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요리기도 합니다. 많지 않은 기억 속 아빠의 사랑이 담겨 있는 요리지요.

카레 하면 아빠가 떠오릅니다

 카레라이스.
카레라이스.정현순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14살 터울이 나는 오빠는 아빠를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제가 아빠를 '아빠'라고 불렀는지 '아버지'라고 불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라면서 아빠와의 애틋한 추억을 쌓으며 함께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저도 그냥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하여 '아빠'라고 부르면서도 늘 낯설고 어색합니다. 아빠와의 어린 시절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했던 얼마 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늘 버겁습니다.


솔직히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도 장지에서 아빠의 옷가지를 태우며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고모들이 "딸이 울어야 아빠가 좋은 곳으로 간다"라면서 제게 울기를 강요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아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제 기억 속의 아빠는 버스 운전기사셨습니다. 당시 아빠는 이틀을 근무하고 하루를 쉬는 방식으로 일하셨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회사는 서울, 집은 서울과 경계에 있는 경기도였던 탓에 아빠는 쉬는 날에만 집에 오셨지요.


아빠 옆에 쪼그리고 앉았던 나

 카레에는 역시 감자가...
카레에는 역시 감자가...pixabay

어쩌다 엄마와 서울나들이를 가면 가끔 아빠가 운전하시는 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는 제 차지였지요. 그때는 버스마다 머리에 동그란 모자를 쓰고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차장언니가 있었지요.

차장언니의 "오라이~~" 소리가 들리면 요술처럼 커다란 버스를 움직이게 만드는 아빠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대단해보였습니다. 당시 제 꿈은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의 차장언니가 되는 것이었죠. 어느 순간 차장언니들이 사라져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긴 했지만요.

아빠가 쉬는 날, 집으로 오시는 날은 카레를 먹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늦둥이 어린 딸을 위해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직접 카레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빠가 어디에서 카레요리를 배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손수 야채와 돼지고기를 다듬어 카레를 만드셨지요.

제법 덩치가 크셨던 아빠가 어린 딸내미 먹인답시고 방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야채를 다듬던 뒷모습이 아련하게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아빠가 카레를 만드실 때면 천방지축 윗동네 아랫동네로 뛰어다니느라 온종일 집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날이 허다했던 저도 아빠 곁에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카레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답니다.

나의 '카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사실 아빠의 카레가 어떤 맛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레가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신이나서 동네방네 '오늘 카레 먹는다"라면서 자랑하고 다녔지요. 때로는 동네아이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했고요.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이었죠.

늦둥이딸을 위해 카레를 만들면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우리 오빠)을 낳고, 14년 만에 낳은 딸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카레는 아빠가 늦둥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요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카레를 해줄 때면 늘 아빠가 생각나 흐뭇하면서도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 않음이 서글퍼집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카레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카레 #아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어떤 사항에 대해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고 글로 남겨 같이 나누고싶어 글 올립니다. 아직 딱히 자신있는 분야는 없지만 솔직하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