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위컴 당시 주한 미 8군 사령관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모욕감으로 치가 떨렸다. 신군부의 만행을 묵인하고 정권 찬탈을 방조한 미국의 한국 주둔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라니,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한 모욕감이 아니었다. 이상한 모멸감이었다. 겉으로는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속으로는 찔리는 것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 민족의 열등한 근성과 치부를 들켜버린 데서 오는 미묘한 자기모멸감 같은 것이 실은 더욱 뼈아팠다. 말하자면 이중의 아픔이었다. 외국인에게서 모욕을 당했다는 감정과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 내 가슴에서 쌍곡선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위컴이 지적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을 되새기고 확인하는 비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을 생각하면 위컴의 '들쥐론'이 오버랩 되곤 한다. 북한의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는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는 비결은 바로 우리 민족의 들쥐근성에 있다. 그것을 빼고는 북한의 신기하고도 가공할 독재체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거기에서도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 북한도 우리 동포, 같은 민족이 아닌가. 바로 우리 민족에게서 세계 유일의 폐쇄왕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내게 좀 더 얄궂은 수치심으로 작용한다. 정말이지 우리 민족은 별종이다. 세계인들에게 창피스럽고, 그만큼 슬프다.
북한의 독보적인 폐쇄왕조 체제를 가능케 하는 들쥐근성은 남한에도 있다. 남한 사회의 곳곳에서도 들쥐근성의 유형들을 접하고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세습 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개신교의 일부 대형교회들이다. 대형교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신(狂信)의 기류들이 잘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특이성이 빠른 기간 내에 가공할 성장을 이룩하여 수많은 대형교회들을 출현시켰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 세습체제의 유사성'반공'을 입에 달고 사는 일부 대형교회의 교역자들은 기절초풍할 말일지 모르지만,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는 한마디로 닮은꼴이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성격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왕조체제와 남한 대형교회들의 세습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들쥐근성과 광기에 가까운 극렬함, 두 기둥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1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가 1, 2, 3위를 비롯하여 7개나 되고, 세계 5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들이 절반에 가까운 23개나 되는 현상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특이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으로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게 이상한 공포감마저 갖게 한다.
최근 세상에 드러난 박성배 목사의 66억 탕진 도박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목사를 무조건 믿고 따르며 추앙하는 신앙 태도, 들쥐근성의 발호 때문에 66억을 탕진하는 목사의 도박 행위도 발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