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2정정엽 작. 162x130cm oil, acrylic on canvas 2015
박건
작품의 소재들은 달래, 두릅, 당귀, 냉이, 질경이, 고들빼기, 감자, 고구마 그리고 가지 등이다. 그리고 수십여 종의 벌레들이 꽃비 내리듯 쏟아지는 작품도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골에서 늘상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낯설다.
감자, 고구마 같은 경우 싹이 돋았다. 외계 물체 같은 데다가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감자와 고구마를 이렇게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고흐도 '감자를 먹는 사람'을 그렸지만, 감자만을 그리진 않았다.
정정엽 작가가 그린 감자싹과 나물 그림은 그들 자체로써 격조와 존재감, 생명의 황홀감을 펼쳐 보인다. 그것도 현대 문명이 추구하는, 티끌 하나 살지 않는 세련되고 럭셔리한, 초대받지 않은 공간에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당혹스럽고 놀라게 한다.
감자들은 세포가 증식되고 거대하게 자라 내장을 드러낸 채 말끔한 현대식 건축 공간에 놓였다. 기묘한 긴장감을 주면서 관객을 압도한다. 이를 지원하는 나방도 날아든다. 이들이 문명과 공존·화해를 하려는 것 같아 엉뚱하면서 순진하고, 애틋하면서도 우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