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8일, 최초의 수요 시위 당시 김혜원 선생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제공
- 처음으로 수요집회를 했던 날,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 같은데요."그때도 엄청 추웠던 거 같아요. 그렇게 추운 날, 지금처럼 호응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고, 지금에 비하면 상당히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때 그 뜨거운 마음, 그렇게 불타올랐다는 것, 생각하면 참, 그때 참여한 저로서는, '장하다', '김혜원 너 잘했다', 그렇게 날 칭찬해주고 싶어요. 이제는 늙어버려서 추울 때는 잘 나가지도 못하고 이렇지만. 그때 사진, 그때 입었던 내 코트도 다 낡아 없어졌고 그렇지만.
그때는 이렇게 하면 일본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이런 희망을 갖고 시작했던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뻔뻔스러울 줄, 후안무치할 줄, 그때는 전혀 몰랐죠. 우리가 이렇게 끈질기게 외치고 하면, 한 5년 정도 싸우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저, 정말 그렇게 나이브하게(순진하게) 생각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죠.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죠."
1992년 그 날, 비록 할머니들보다는 젊었지만, 선생님의 그때 나이도 57세였습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했던 일에 대해 자신을 칭찬해 줄 수 있는 경우, 얼마나 될까요. 또 그래서일까요. 2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어느덧 우리 나이로 82세, 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쨍쨍"했습니다.
"목소리는 쨍쨍하죠? 사람들이 그래요(웃음). 얼굴은 조글조글하죠. 내가 시위 현장에 가면 기자들이 와서 나를 위안부 할머니냐고, 인터뷰하겠다고, 그런 적도 있어요. 그동안 그렇게 나도 늙어버린 거죠. 그럴 때 내 심정도 그런데, 할머니들은 오죽하겠어요.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피눈물을 토하겠죠. 이용수 할머니가 막, 외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저 할머니들, 두 번, 세 번 죽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오마이뉴스> 독자라면, 아니, 지금 소녀상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분들은 아마 아래 사진을 보셨을 겁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에게 "당신 누구냐, 뭐 하는 사람이냐"라고, "당신이 내 인생 살아 준 거냐"라며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려고 하는 거냐"라고 호통치던 이용수 할머니의 이 모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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