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꿍이의 등하교길8살 여아가 혼자 걷기에는 조금 불안한 그 길
정가람
2013년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이 개봉했을 때 난 차마 그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내가 딸을 가진 부모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취향의 탓도 있었겠지만, 딸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접한다는 사실 자체가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딸자식 가진 부모에게 2015년 연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합의다.
만약 당신의 딸이 '당했다'면처음 정부의 발표를 접했을 때, 난 그 기사의 진위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결론은 한국 정부가 단 돈 10억 엔을 받고 일본의 위안부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정부가 사회적인 논의 없이는 결코 진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현 정부가 막 나간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국민 정서 상 '역린'에 가깝다. 그것이 한·미·일 동맹에 걸림돌이 되고, 한일 양국 관계에 장애물이 된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근대국민국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가 그 구성원의 보호에 있다면, '위안부'는 대한민국이 헌법에 3.1 운동을 계승한다고 적은 이상 국가가 국가의 본질적인 임무를 못한 대표적 사례로서, 힘없는 국가가 개인에게는 얼마나 큰 재앙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위안부'는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다는 참혹한 과거를 의인화시키는 존재로서, 현재 생존해 계시는 피해 할머님들은 그 자체로서 일제 만행의 산 증인이며, 우리 민족의 아픔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이 땅에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며, 그와 같은 범죄 행위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지도록 전 세계와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소녀상'은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또한 인류의 유산이다.
그런데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는 그 어떤 상의 하나 없이 일본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맺었다고 공포했다. 역사란 끊임없이 되새기고 공부해야 하는 것임에도, 정부는 더 이상의 합의는 없다고 밝혔다. 아직은 진실게임 양상이지만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도 합의의 조건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합의 발표 이후 직접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중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지금도 위안부 소녀상 앞에 모여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관변 단체들의 막말이었다. 자신의 딸이 위안부였어도 지금처럼 하겠다며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합의를 옹호하고 나선 '엄마부대 봉사단' 주옥순 대표. 만약 그녀가 딸자식을 키웠다면 그 딸과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성범죄' 합의를 받아들이라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