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김동환
"어느 나라 정부가 부동산을 시장에 맡깁니까. 부동산은 다른 물건과 달라요. 정부가 집 가진 사람, 집 없는 사람 둘다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개입해서 가치 중립적인 정책을 펴야해요."'부동산은 시장에 맡겨두면 안 된다'는 도발적인 지적에 잠시 대화가 멎었다. 정부의 개입? 그럼 각종 부동산 규제를 질타하는, 신문지상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뭐란 말인가.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 미소를 띠며 "제가 지금 얘기하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세계 표준)'적인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정대영 송헌경제연구소장이다.
정 소장은 한국은행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한 '금융통'이다. 한은 금융안정분석국장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인재개발원 주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를 펴냈다. 최근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와 문제, 해결을 다룬 <한국경제 대안 찾기>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높은 부동산 가격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한다. 양극화, 일자리 부족, 자영업자 폐업 등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높은데도 정부는 계속 부동산 부양 정책을 쓰고 있다"면서 "시민들이 크게 경제 전체를 보고서 이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높은 부동산 가격, 사회 경쟁력 떨어뜨리고 있어"- 책에서 '높은 부동산 가격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표현한 게 화제가 됐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거라고 본다. 집이 없으면 생존이 힘든데,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더라도 1년에 5000만원씩 오르는 서울 아파트 전세를 감당하기 어렵다. 부부가 합쳐서 1억 연봉이어도 전세 오름폭을 못 맞춘다. 주거에 돈이 묶이니 가장 왕성한 소비를 해야 할 30대들이 소비도 안 한다.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 높은 임대료 때문에 폐업하는 자영업자들도 속출하고 있다."자영업자가 장사하려면 임대료, 인건비, 원자재 비용 등이 들어간다. 여기서 원자재 비용은 뻔한 거고 임대료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인건비 깎고 사람 안 쓰고 하다가 떨어져 나가는 구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이유가 싼 인건비, 노사관계 등도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높아서 공장 짓기가 어려운 이유도 크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도 많다. "결혼에도 당연히 집이 필요하니까. 집을 사려면 결혼을 미루게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집값과 집세를 확실히 안정시키지 않으면 무슨 출산장려 지원책을 써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가장 큰 장애요인이 취업, 그 다음이 집이다."
- 사람들이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도 문제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5년만에 최대폭 증가를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이미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급격한 충격으로 올지, 아니면 일본처럼 서서히 경제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올지 둘중에 하나다. 이미 일본처럼은 진행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최근 몇 년째 소비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상태가 진행되고 있다. "
-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도 상당한 부담이라는 지적이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를 많이 내야하니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소비 위축이 되면 내수가 줄고, 장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경제라는 게 사람이 예측을 못하는 충격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지금 1.5% 수준인 미국 금리가 2%를 넘기 시작하면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 가계부채 총액은 늘었지만 연체율은 낮고 큰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이 연체율이 낮은 이유는 제도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이자를 갚지를 못하면 다른 소득이나 재산으로 변제를 해야한다. 가령 시가 5억 원짜리 아파트로 3억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나 원리금을 못 갚으면 차압이 들어온다. 이걸 소구권이라고 한다.
미국같은 나라는 'non recourse'라고 해서 대출 대부분에 소구권이 없다. 내가 돈을 빌렸는데 갚기가 어렵다고 가정하자. 은행에 그렇다고 얘기하고 집키를 주면 은행이 그 집을 처분해서 돈을 알아서 가져간다."
- 한국은 더 악착같이 빚을 갚게되는 구조라는 얘긴가."그렇다. 미국은 경기가 나빠지면 연체율이 서서히 오른다. 반면 우리는 경기가 나빠져도 웬만해서는 연체율이 오르지 않는다. 갚다가 갚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채무자가 나자빠지는 구조기 때문이다. 그래나 한번 연체율이 빠르게 오르면 그때는 대응이 불가능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