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혜
남경호
"예술가에게도 융통성 필요하다는 생각...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선물>의 인세 전액과 판매 수익금 일부가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승일희망재단에 기부된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등 재능 나눔 활동에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평소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2014년에 우연한 기회에 '세이브 더 칠드런'과 작업을 했어요. 사회 공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그린 그림으로도 기부활동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사실 2015년 초에 책을 내면서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에 올해 더 이상의 책은 출간할 계획이 없었는데, 제가 기부 쪽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아시고 출판사에서 제안해주셨어요. 작년에 제 책이 갑자기 많이 알려지면서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거든요. 올해는 제가 그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었어요.
이번 책 <세상의 모든 선물>은 주인공인 여자 아이가 자신이 진짜 선물이 되기 위해 고양이 뵈뵈와 함께하는 여정을 담고 있거든요.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하나씩 나눠주는 거예요. 이 책의 역할도 스토리를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인공 소녀가 세상에 선물을 나눠주듯 책의 수익금은 기부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 순수예술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컬러링북을 출간한다고 했을 때 주변 분들도 의아하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그럼요. 심지어는 아직도 컬러링북이 뭔지 모르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도 본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전시를 한 번 보면 끝인데 이건 직접 참여해서 뭔가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워낙 독창적인 컬러 매치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참고할 때도 있어요. "이거 참고해도 될까요?" 하고 직접 묻기도 하고요.(웃음)"
- 상업적인 활동을 '불합리한 타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맞아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 굉장히 많죠. 제가 책을 내는 것도 상업적인 활동이잖아요. 한 번은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책을 내더니 그림체가 바뀌어서 아쉽다고요.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림에서 변화가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예술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제가 추구하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 순수예술가뿐만 아니라 상업작가들에게도 활동영역이나 시장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재능만의 문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는데요, 그분들의 열악한 처우나 환경에 대해 작가님께서도 생각하시는 바가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는 순수예술도 했고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상업작가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모든 걸 다 겪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은, 다른 것을 떠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견딜 수는' 있다는 거예요. 정말 제 주변 사람들만 봐도 어려워도 끝까지 남는 분들이 있어요. 왜냐면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없으니까요. 미미할지라도 조금씩 반응을 얻고 그 시기를 버텨나가면 당장에 아주 큰 결과가 아니더라도 발전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포기할 수 없는 뭔가가 내 안에 생겨나요. '이걸 그만두면 안 되겠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참 어렵죠, 그게. 저도 참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무조건 순수예술만 고집하는 편은 아니었고 생업이었기 때문에 강의도 했고 상업적 작업도 했었죠. 융통성 있는 활동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선순환이 된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상업활동으로 얻은 자금으로 다시 순수예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식의 순환 말이에요."그럼요. '난 이것만 할 거야'라는 마음보다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서 달려간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죠. 그래도 저는 나름의 철학을 담은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지금의 컬러링북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분야든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
- 중학교 특강도 나가고 있으시죠? "계원예술중학교에서 5년째 강사로 재직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아무래도 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기보다 소통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그거 때문이에요. 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가르쳤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얻는 게 훨씬 많아서 강의를 나가고 있는 거죠. 그 친구들의 에너지가 정말 좋아요. 본인들은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순수한 면이 있거든요."
- 컬러링북 출간에 대해 제자들도 많이 좋아하겠네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 선생님 별 볼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러는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기르게 하는 드로잉과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예술에 특화된 학교이기 때문에 입시 미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창의력보다 정형화된 사고를 가진 아이들이 있어요. 속에 숨은 창의력을 들춰주기 위한 수업을 하면서도 어느 순간 제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왜냐면 아이들의 것은 조금 어설프고, 제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선생님이 가지고 온 대로 하면 더 예쁜 결과물이 나올 거야." 어느 순간 이런 저를 발견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 작품이 아니라 제 작품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커리큘럼을 바꿨죠. 아무래도 아이들은 조금 어설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작품들이 완성돼요. 그런 작품들을 보며 전 영감을 받고요. 아이들로부터 받는 영향도 상당한 것 같아요."
- 앞으로도 조형예술이나 섬유예술 활동을 계속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컬러링북 활동을 어느 정도 한 뒤에 다시 조형예술이나 섬유예술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에요. 순수예술을 통해서 컬러링북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거고요. 사실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혼자서만 하다 보니 외로웠는데 지금은 제 작품에 대한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오다 보니까 재미있어요."
-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지금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소녀가 행복을 찾아서 어디로든 가는 내용들이거든요. 큰 그림은 소녀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인 거죠. 나중에는 이 여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서 동화책을 만들고 싶어요. 컬러링북이 아니라 저만의 색으로 표현한 온전한 동화책으로요. 어찌 보면 컬러링북은 굉장히 트렌디 한 건데 동화책은 오랜 시간 동안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거니까요."
- 얼마 전 허영만 작가님을 인터뷰했는데, 허 작가님은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지면을 만들면 그만한 대가를 받고 성공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주고 싶다는 말이었는데요, 작가님께서도 이런 목표 하나쯤 갖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사소한 것도 타협하지 않는 편이고요. 작은 선 하나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그대로 넘기지 않아요. 그래서 조금 까다롭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좋은 퀄리티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목표예요.
사실 저는 상업적으로는 계산을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나눔'에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재능 나눔을 통해 저만의 목표를 이루고 싶었는데 컬러링북을 통해 그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늘 진실성이 담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표현하는 그림 속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