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김호영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마누엘 푸익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에 합류한 그의 역할은 정치, 사상, 이념에는 관심 없이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인물 몰리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감옥 안에서 이성적이고 냉혈한 같은 반정부주의자 발렌틴과 한 방을 쓰는 몰리나는 가석방을 조건으로 발렌틴에게 반정부조직에 관련된 정보를 캐내라는 압박을 받는다. 자신의 목적을 숨긴 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영화 이야기를 통해 점차 가까워지는 두 사람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진심으로 끌리게 되면서 결말을 알 수 없는 전개가 시작된다.
1976년 스페인에서 책으로 출간된 <거미 여인의 키스>는 독특한 구성과 정치범과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내에서 판매가 금지될 정도의 문제작이었지만, 해외에서는 대성공을 이루며 이름을 알렸다.
매혹적인 표지의 여인과는 달리 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몰리나와 발렌틴이라는 남자 둘뿐이다. 금기시된 소재를 통해 억압된 사회를 고발하고자 했던 마누엘 푸익의 작품은 이후 영화와 연극으로 재현됐다.
그러나 김호영은 이번 역할에 있어서만큼은 최대한 연극 대본에만 의지한 채 감정을 쌓아간다고 말했다. 혹여나 소설을 모두 읽고 자신이 몰리나라는 역할에 무의식적인 제한을 둘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감정을 찾아가보고 싶었다고.
"소설을 다 읽지는 않았고 영화를 먼저 봤죠. 영화를 괜히 본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역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한 인물을 구현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연극은 영화와는 조금 다르고 오히려 원작 소설에 더 가까운 느낌인데, 그래도 많이 다를 거예요. 마치 영화 <왕의 남자>의 공길과 원작 연극 <이>의 공길이 다른 것처럼요. 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는 여러 소재가 들어 있지만, 결국은 사랑 이야기예요. 거미는 먹잇감이 거미줄에 걸려들면 형태는 그대로 두고 촉수를 이용해 안에 것만 쪽쪽 빨아먹는대요. 두 사람도 그렇죠. 겉으로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결국에는 마음속의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남자 단 둘이 이끌어가는 극인데다가 그가 맡은 몰리나 역의 심리 변화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더욱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관객들의 반응에는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극 전개상 굉장히 많은 의미를 지닌 장면인데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정말 당황스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전달을 잘못한 걸까? 사람들이 극을 따라가지 못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장면 자체가 웃음으로 희화되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숙제 하나를 갖게 됐으니 더 큰 목표를 가진 셈 치고 열심히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