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육포럼 둘째날인 지난해 5월 20일, '한국 교육 특별 발표회'가 끝난 뒤인 오후 6시 25분께 문아영 평화교육 '모모' 대표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아온 외국 대표들을 상대로 발언하고 있다. 앞서 문 대표는 90분간 한국교육을 '자화자찬'한 한국정부의 발표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하려다가 행사 진행 쪽에 의해 제지당했다. 행사 진행쪽은 한국어 동시통역을 중단하고 마이크도 껐다. 하지만 70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상당수가 문 대표를 향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들 중 100여 명은 30여분 간에 걸쳐 문 대표 얘기를 듣고 서로 얼싸안았다. 문 대표는 이번 행사에 한국정부와 국제NGO단체의 초대를 받아 정식 대표로 참여한 인사다.
윤근혁/오마이tv
지난 2015년 5월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육포럼이 열렸고 나는 한국 NGO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포럼 둘째 날 오후에는 "교육이 발전을 이끈다"는 제목의 한국 특별 세션이 진행되었는데,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육의 '성공'만을 깨알같이 조명함으로써 성과주의에 포섭당한 한국교육의 결과 집착증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교육이 발전을 이끈다"라는 제목부터 벌써 교육이 발전을 위한 도구임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양적 발전에 집착하는 것이 한국 정부만은 아니다. 송도 세계교육포럼은 2030년까지 추진될 세계교육의 목표를 수립하는 자리였다. UN이 새천년개발목표(MDGs, Millenium Developmet Goals)이후 새로이 합의해 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17가지 목표 중 4번 목표인 교육은 모두 7가지의 세부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중 목표 '4.7'은 아래와 같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 인권과 성평등, 비폭력과 평화, 세계시민의식 등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4.7 2030년까지 모든 학습자들이, 지속가능발전교육(ESD)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교육, 인권과 성 평등 교육, 평화의 비폭력 문화의 증진교육, 세계시민성과 문화적 다양성 교육,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문화적 기여 교육 등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보장한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것은 지금까지 유엔(UN)에서 논의되고 있는 4.7번 목표의 가장 유력한 평가 기준은 전 세계 '15세 청소년들의 환경과학과 지구과학 지식 숙련도'라는 것이다. 지구과학과 환경과학 성적을 지표로 삼아 4.7번 목표의 도달 여부를 측정하겠다는 이야기인데, 환경과학과 지구과학 성적이 어떻게 인권과 평화, 비폭력과 세계시민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대체 알 수가 없다.
이 교육목표 수립과 관련한 유엔의 기술자문그룹 역시 현재 채택하고자 하는 지표인 27항보다는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이 교육에서 얼마만큼 주류화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25항을 채택할 것을 권고했으며 지표를 확정하기 위한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25항. (i) 세계시민교육과 (ii) 지속가능발전교육이 (a)국가교육정책, (b)교육과정, (c)교원교육과 (d) 학생평가에서 주류화되는 정도.27항. 환경과학과 지구과학 지식에 있어 숙련도를 보이는 15세 학생의 비율 숫자로 환산되는 교육은 숫자 뒤의 사람을 삭제한다. 따뜻한 체온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들을 지워버리고 등수와 점수로 그 존재를 대체하는 것이다. 발전을 위한 교육은 사람을 수단화하고 도구화한다. 발전에 최적화된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이 교육이 목적이 되어버리므로.
얼마 전 캐나다 앨버타대학이 진행한 닭의 크기에 대한 연구를 접하게 되었다. 닭의 몸집이 50년 전에 비해 무려 4배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점점 커지고 있다는 한국 청소년의 평균 신장과 PISA 테스트 결과를 떠올렸다.
닭의 몸집을 급격하게 불리기 위해서 얼마나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을까? 닭의 몸에 어떤 영양제와 화학물질들이 주입되었을까? 닭들은 먹이 호스를 식도에 꽂기 위해 부리를 잘렸을 것이며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금됐을 것이다.
양돈장 돼지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우리 바깥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다가 도살장을 향하는 길에서야 바깥으로의 첫걸음을 떼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느껴보는 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발목이 부러지는 일이 빈번하단다.
감당할 수도 없고 배워봐야 소용도 없는 지식들을 잔뜩 짊어지고 책상머리에만 갇혀있던 우리에게 근성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질타가 쏟아질 때, 공부 열심히 하래서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한 공부의 결과는 "공부만 열심히 했다는 비난"일 때, 우리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출근길 신도림역처럼, 누군가 등을 떠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