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샨티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안 계셨지만 마을에서는 할머니를 어디에서나 마주했습니다. 할머니는 누구나 느린 걸음이었고, 짐을 잘 들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누구나 찬찬히 말씀을 하고, 따사로운 목소리와 손길로 다가오셨습니다.
"여그서 걸어갈 때는 아파 죽겄어. 근디 산에 들어가믄 아픈 줄도 몰라. 꼬사리 끊다 보믄 오지가꼬 암시랑토 않당께. 내일은 집이도 같이 가. 고롱구테(골짝 이름)로 갈라니께." (<할머니 탐구 생활> 19쪽)"어쩌면 하느님도 고사리며 산더덕 같은 나물을 미끼로 사람들을 산으로 불러들이시는 게 아닐까?"(위의 책 24쪽)정청라님이 멧골자락에서 오붓하게 지내는 살림살이 이야기를 담고, 이러한 살림살이를 임종진 님이 사진으로 살가이 담은 <할머니 탐구 생활>(샨티, 2015)을 가만히 읽습니다.
정청라님은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냅니다. 시골자락에는 거의 모두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아니, 시골자락에는 젊거나 어린 사람은 모조리 도시로 나가고 없다고 해야겠지요. 마을에서 한 시간쯤 걸어서 나와야 비로소 군내버스가 지나가는 곳에 이른다고 하니, 이런 멧골에서 조용히 살려고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매우 드물다고 할 만합니다. 자가용 없이 이런 멧골에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드물다고 할 만하고요.
그렇지만 정청라 님네 집안에 처음부터 자동차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있었어도 이 자동차를 탈 수 없는 살림이 되었다고 할까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냥 자동차하고 살며시 멀어진 살림이라고 할까요.
자동차를 달려서 읍내나 면내를 다녀올 적에는 이대로 재미있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읍내나 면내를 다녀올 때에는 이대로 즐겁습니다.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먼먼 옛날부터 걸어서 그 길을 오가셨겠지요.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이녁이 어릴 적부터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지나면서 마실을 다니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