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모으는 아빠, 이게 다 너희 때문이란다

[반가워! 2016 ④] 병신년을 임하는 마흔의 자세

등록 2016.01.04 16:59수정 2016.0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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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다가왔습니다. 각종 매체에서 새해를 맞아 '한국사회, 이것만은 바꾸자' 류의 기사를 생산하곤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시선을 당신에게 맞추고자 합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새해, '당신의 새해 바람'은 무엇인가요. [편집자말]
지난 가을 문경새재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흐르는 물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지난 가을 문경새재에서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흐르는 물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이정혁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밤새 머리 위 둥지로 날아드는 온갖 잡생각들로 인해 수면장애가 왔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도저히 힘든 날은 술로 잠을 청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 진단이었다. 나처럼 밝아 보이는 사람이 우울증이라니! 한 길 사람 속은 자신도 모르는 법이다.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면서도 몇 년을 아픈 데 없이 보냈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살면서도 상식과 정의는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협동조합에 미쳐서 본업에 소홀하기도 했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의 절반쯤은 바쳤다. 그러다 보니 마흔의 고개를 넘었다.

우울증 약을 삼키고 나자 인생의 시계가 멈춘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망률이 제일 높다는 40대. 초입에서부터 정신과 육체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내게 줄 선물이 필요했다. 생활의 변화, 사고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절실했다. 그 시작점이 바로 2016년이다. 예전처럼 몸을 막 굴리다간 큰일 날 수도 있겠다.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어리 소형 노트북 크기만하고 두께는 웬만한 양장본 책 두께다. 장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어리소형 노트북 크기만하고 두께는 웬만한 양장본 책 두께다. 장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이정혁

우연이랄까? 직원 한 명이 새해선물이라고 10년짜리 다이어리를 선물해줬다. 주문 수량을 잘못 눌렀는데, 반품하기 귀찮다고 나더러 쓰란다. 고마울 따름이다. 뭔가 새해엔 일이 잘 풀릴 조짐이다. 한 칸씩 쓰다 보면 1년 뒤에 지난해의 기록을 만나게 되는 신기한 구조의 다이어리다. 앞장에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페이지를 구성해놨다. 잠 못 이루던 새벽, 조용히 거실에 나와 다이어리를 편다.

마흔 살의 나이 그리고 10년의 계획. 앞으로는 타인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려 의식하지 않으리라. 인생을 낭비할 시간 여유도 더 이상은 없다. 흐릿한 백열등 아래에서 내게 줄 선물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선물들을 하나씩 공개한다. 별건 아니지만, 내 또래의 혹은 40대를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다.

'나이 마흔에 무슨...' 이런 거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무엇보다 건강을 지켜주는 것. 작정한 지 3일 만에 무너지는 금연이니 금주니 하는 것들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남은 인생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운동이 두 가지 있었다. '나이 마흔에 무슨…'이라며 비웃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기로 했잖은가. 그 두 가지는 바로 검도와 권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인지 비용이 많이 드는 검도는 애초부터 나와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무의식을 지배하는지 선뜻 용기 내기 어렵지만 꿈 한구석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록키>나 <챔프> 같은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 권투는 한번쯤 배워보고 싶은 운동이다.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실제 주먹이 뻗어 나가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새해에는 둘 중 한곳에서 땀 흘리는 나를 바란다.


구석에 쳐박힌 슬픈 기타 두번의 도전을 실패하고 원장실 구석에 내팽개쳐진 기타를 새해에는 다시 끌어안아 보련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를 위하여.
구석에 쳐박힌 슬픈 기타두번의 도전을 실패하고 원장실 구석에 내팽개쳐진 기타를 새해에는 다시 끌어안아 보련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를 위하여.이정혁

두 번째 선물은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주는 것. 시간을 핑계로 미뤄두던 것이 역시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글쓰기인데, 새해에는 <오마이뉴스> 명예의 숲(톱 기사 100개 작성)에 도전할 것이다. 작가가 꿈인 내게 <오마이뉴스> 기사 쓰기는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가장 큰 서포터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기타 배우기. 나의 버킷리스트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광석이형(고 김광석) 노래를 세 곡만 기타를 치며 불러보는 것이다. 벌써 도전에 두 번 실패했으나, 이번에는 남다른 각오로 재도전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하모니카와 더불어 멋지게 연주하며 노래하는 나를 바란다.

결심했다, '착한 사람 강박증'을 버리겠다

세 번째 선물은 진정한 가장으로 살아가기다. 바뀌는 새해에 드디어 학부형이 된다. 취학 통지서를 받아들고 얼마나 기뻤는지, 예비소집일에 직접 참석하려고 휴가를 신청했다. 초등학생이 되는 큰아이를 위한 나의 새해 목표는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아침밥을 먹는 것이다. 여유 있는 저녁 식사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저녁이 없는 삶이므로 아침이라도 온 가족이 얼굴을 보며 밥 먹기를 바란다.

덧붙여 온 주말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있다. 아이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내의 토요일 근무도 줄였다. 아내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몰랐겠지만,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캠핑 장비는 필수다. 너희들과 야외로 나가기 위해 아빠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단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아이들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나를 바란다.

네 번째 선물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다. 어쩌면 너무도 쉬운 일이고, 지극히 사적인 일이지만, 내게는 필요한 선물이다. 억눌린 영혼에 단비를 내려주는 일.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기'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의무감,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기분을 항상 살피는 눈치병,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로 한다. 가슴에 켜켜이 쌓인 못다 한 말은 화병과 암이 돼 돌아올지어다.

또한 최근에 읽은 <미움 받을 용기>에 나오듯, 나의 과제에만 충실해 보기로 한다. 내 일이 아닌 일로 인해 지치고 상처받은 불쌍한 영혼을 위해 어깨 위의 짐을 덜어주자. 재주인 양 부리던 오지랖도 이쯤에서 반쯤 접어 서랍 속에 넣어두자. 그리고 삶의 주인인 나만 생각해보자. 그 연장선상에서 너 그리고 우리가 나올 테니까. 이제 진정 나를 위한 나를 바란다.

이런 선물들을 새해의 나에게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선물들을 가득 들고 기뻐하며 하나씩 깨닫고 행동하는 나를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은 주지 말자. 지금껏 이만큼 살아온 내가 대견스럽지 않은가? 그동안 세상을 살아내느라 심장에 구멍이 뚫린 나를 꼬옥 한번 안아주자. 그리고 세월의 향기를 짐작하기 시작한 나이의 나를 이제는 좀 편히 놓아두자.

삶의 절반을 살아낸 나를 위하여.
#병신년 #미움 받을 용기 #10년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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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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