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근 면장이 대야면 위치를 지적하고 있다.
조종안
전북 군산시 대야면은 서해안고속도로와 전주-군산 고속화 도로가 지나는 군산의 관문이다. 면소재지는 '지경리'에 있다. 인구는 12월 18일 현재 5657명(남성 2876명, 여성 2830명)으로 10년 전보다 2000여 명이 줄었다. 본래 임피군 지역으로 임피읍 남쪽이 되므로 남삼면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인근 지역 일부를 병합해 대야면으로 개칭하고 옥구군에 속했다가 1995년 도농 통합으로 군산시가 됐다.
대야(大野)라는 지명은 호남평야와 맞닿은 드넓은 들녘에서 유래했다. 군산 개항(1899) 이전에는 만경강 강심이 백마산 아래까지 이어져 배를 타고 드나들어 '배닿을메'(배달메, 배달뫼)라 했다. 옥구·임피 경계 지역이어서 지경(地境)으로도 불렸다. 기차역도 1912년 3월 군산선(군산-이리) 개통 이후 지경역으로 불리다가 1953년 6월 1일 대야역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른다.
군산선은 원래 대야를 경유해 직선 코스로 회현 용화산을 뚫고 옥산면 남내리 지경장터를 거쳐 군산에 이르도록 측량됐다. 그런데 옥산면 부호(만석꾼)이며 중추참의 직분을 가진 문종구가 철도가 놓이면 자기 선산이 훼손되고 전답이 손상될 것을 예상하고 총독부와 교섭하여 '지경장터' 푯말을 십 리 밖으로 밀어내고 이름을 지경역이라 칭했다고 전한다.
백마산도 민족의 수난사 한 대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을사늑약(1905) 이후 일제가 더 많은 호남평야 쌀 수탈을 위해 지금의 전군도로(전국 최초 2차선 신작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갈마음수(목마른 말이 물을 마심) 명당인 백마의 머리와 허리를 절단해 산신노호가 발생, 청장년 12명이 검게 타 급사했다는 것. 이를 두고 주민들은 일제가 철도와 도로를 내면서 명산 혈맥을 단절해 백마산이 피를 흘렸다고 말한다.
군산에서 남동쪽으로 10km 남짓 거리에 위치한 대야에는 갈마음수, 오산명월, 오동무학, 도척온수, 광법사 효종성, 운심사 귀승문답, 우산낙조, 신창귀범 등 대야팔경(大野八景)이 있다. 그중 1920년 송암선사가 창건했다는 광법사는 상해임시정부 군산 옥구지구 총변 노춘만, 강문주, 최공훈 등이 만세운동 지도와 군자금을 모금하며 투쟁한 혈맹지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