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교보문고 진열대 위에 놓인 자기계발서들.
하지율
"그대의 삶이 10~20대 시절 원했던 바로 그 삶이 아니라면, 운명이나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그대의 혀를 탓해야 한다" (이지성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중)오 박사는 더 큰 문제로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 타인의 상황을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을 꼽는다. 이러한 태도가 '이성적' 접근으로는 객관적 측정·비교가 불가능한 것을, 측정·비교하도록 영향을 끼쳐 사회의 '공감 무능력'을 낳을 위험이 크다는 비판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이란 '고통'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고통이란 한 개인이 특정한 현상에 반응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상태"이며 "공감이란 타인의 상황을 사회적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고통을 엄청나게 그려낸다.
이때 이십 대들은 "지금 내가 힘든 건 힘든 축에도 못 끼는구나" 하는 식으로 주눅 드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하소연조차도 응어리지는 마당에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더 저하될 수밖에 없다. 타인의 호소는 "한순간에 '입 닥쳐야 할 징징거림'이 되고, 그렇게 고통의 비교 법칙이 이십 대를 통제한다"는 게 오 박사의 설명이다.
아르스프락시아 연구원 김학준도,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평범 내러티브'('누구나 고통스러운 부분 하나쯤은 있으며, 그러니 대부분의 고통은 평범한 것이고, 고통스럽다며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는 것 또한 무임승차다'라는 식의 논리)라는 유사한 예를 들기도 했다.
한편 공감 무능력은 편견을 강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인 '인지 부조화'(가령, '한 번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계속 미워하게 된다')나, 생존 불안과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를 멸시하려는 '노력 정당화 효과' 등과 결합할 때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더욱 파괴한다(강준만 <감정독재> 적용).
가령 세월호 특례 입학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심리적 흐름이 만들어낸 좁은 해석의 결과일 수 있다. 수능의 원래 명칭은 '대학(大學) 수학능력 시험'인데, 여기서 말하는 학(學)은 학문(學問)을 말하며 본질적으로 이미 '묻는다'(問)는 뜻이 내포돼 있다.
묻는 것은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한 인습에 대한 의구심을 포함하며, 이때 "가만히 있으라"(세월호 선내방송)는 말의 허구성을 온몸으로 체화한 이들이야말로 학문에 참여시키기에 적합한 특성을 갖췄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계발론을 깊이 체화한 청년들에게는 힘든 사고방식이다. (이조차도 잘못된 접근이지만) 그 흔한 '배려'라는 관점조차도 적용하지 못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특히 일베가 그렇다).
자기계발론은 20대에 '남 탓, 핑계 대지 말고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력하라!', '날로 ○○ 입사(입학)하려면 안 되죠!'라는 빈약한 공정성 개념을 이식한다. 또 "아무도 20대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아무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게 돼"버린다. "아무도 역지사지해주지 않는데, 어찌 역지사지의 입장"을 가지겠느냐고 오 박사는 묻는다. 2016년 새해가 밝았다. 만약 본인의 주변에 청년들이 있고, 그들에게 '자기계발서'를 선물할 계획이 있다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섣부른 훈계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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