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미
어딜 가나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화제입니다. 드라마를 통해 1988년 그때의 한국 사회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추억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응답하라'를 보는 눈으로 지금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본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또 문제는 무엇인지. 한때 '50관왕'이냐 '40관왕'이냐 누리꾼들이 논쟁을 벌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2015년 한국사회의 모습을 짚어봤습니다.
OECD가 매년 발행하는 분야별 보고서에 오른 내용을 아래 그래프로 만들었습니다. 그래프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상세수치가 표시됩니다. 현재 정식 가입국이 아닌 OECD파트너 국가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의 통계도 섞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OECD 통계는 표준화 보정을 거친 수치로 각 국가가 내놓은 통계 수치와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진주는 올해 다섯 살입니다. 만으로는 4세이지요. 진주는 오래 살 겁니다. UN의 예상에 따르면, 2010~2015년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평균 84.6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무려 7위에 해당하는 긴 평균수명입니다.
이처럼 평균수명이 높은 건, 한국에서 전쟁이나 범죄 등 공격에 의한 사망률이 매우 낮은 것도 한 원인일 겁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지요. 하지만 진주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교통사고입니다. 멕시코(17.4명)에 이어 2위인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13.9명)은 OECD 평균보다 무려 두 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모두 잘 알고 계시듯이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OECD 1위를 차지한 이후로 좀체 이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게다가 2·3위 국가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 나라인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비슷한 자살률을 보이는 리투아니아의 OECD 가입절차가 끝나면 이 '독보적인 1위'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고 자살률을 낮추는 것이겠죠
진주는 자라나서 똑똑한 학생이 될 겁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거든요. OECD의 국제학생평가(PISA)에서 만 15세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한 결과 한국 학생들이 단연 1위입니다. '근의 공식'을 외우지 못해 쩔쩔매는 덕선이도 OECD의학생들과 겨룬다면, 우등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일까요. 한국에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놀거나 돌봄을 받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도 안 됩니다. OECD 평균은 2시간 30분인데 이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입니다. 입시에 시달린다는 이웃나라 일본도 한국보다는 2배 높은 수치를 보여줍니다. 1988년 쌍문동 이웃친구들 정환, 선우, 동룡이는 학교 야간자율학습을 제끼고 어울리기도 하지만, '응답하라 2015'에선 어림도 없습니다. 방과 뒤엔 학원을 가야하니까요. 집은 그저 잠을 자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모두들 열심히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남들보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하지만 등록금이라는 커다란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덕선이 언니 보라는 사립대에 비해 등록금이 낮은 편인 서울대를 다닌 덕분에 부모님의 걱정을 덜었습니다. 하지만 덕선이나 노을이를 대학에 보낸다면 과연 성동일·이일화 부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선우는 또 어떻습니까. 선우 엄마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선우 등록금 통장'은 2016학년도 등록금 납부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등교육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는 비율이 OECD 1위입니다. 국가가 고등교육 비용부담을 하는 비율이 OECD에서 꼴찌. 한국은 아직도 대학 공부는 각자 돈으로 하는 게 당연한 사회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는 힘듭니다. '응답하라 2015'에선 저임금노동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무려 23.9%나 되네요. 중위소득 노동자의 절반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가 무려 23.9%, 노동자 4명 중에 1명은 저임금 노동자입니다. 임시직근로자의 비중도 무척 높습니다. OECD 통계보다 더 최신 자료를 모은 고용노동부 발간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자료를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