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밖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시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학생과 어른들이 한 팀을 이루어 체육대회를 즐기는 장면
꿈틀리 인생학교
공부는 내 삶을 그 자신으로 채우는 동시에, 다른 것들을 포기케 했다. 기회비용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것이 최고였으니까.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머지 것들은 (어쩌면)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었기에.
내가 그것을 위해 첫 번째로 잊어버린 것은 즐거움이었다. 유치원, 또 초등학교에서 나가서 친구들과 뛰노는 것 대신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며 뜻 모를 시조나 동시 따위를 암송하거나, 가정방문 학습지 문제 풀기를 택해야 했다.
일주일마다 집으로 배달되던 동화책들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포켓몬스터>나 <디지몬 어드벤처>를 볼 시간, 소독차를 따라 친구들과 동네를 뛰어다닐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두 번째로 놓아야 했던 것은 잠이었다. 이미 충분한 시간을 공부에 투입하고 있던 나에게 더 많은 공부를 위해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하루에 적게는 네 시간짜리 쪽잠을 자고도 수업시간에 졸지 않을 방법은 있었다. 친절하게도, 교실 뒤에는 졸린 사람을 위해 마련된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있었으니까.
수면 시간이 줄어들고 나서는 건강도 안녕이었다. 다이어트를 한 적도 없는데 살이 5kg 가까이 빠졌다. 그때는 "공부 다이어트. 개이득"이라고 자랑했지만, 다크써클은 눈 밑 깊숙이 자리 잡았고, 피부도 점점 나빠졌다. 공부로 빠진 살은, 공부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이내 다시 쪄버렸다. 몸은 고등학교 생활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망가졌다. 그리고 난...
오늘도 공부를 위해 많은 것들을 뒤로 제쳐 놓는다. 대학생이 된 후에 꼭 가보고 싶었던 벚꽃놀이는, 시험 기간 아니면 조별발제와 겹쳐 다음 해, 또 다음 해로 미뤘다. 꼭 보고 싶던 영화도 놓쳐 버렸다. 근 20년 동안, 나는 포기하고, 잊고, 미뤘다. 공부를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또 포기하게 될까.
공부중독, 불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