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로 폐허가 된 토미오카 마치 지역(좌)과 기차역(우).
취재원 제공
사고 발생 당시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정남구(47) <한겨레> 경제부장이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2012)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사고 직후 '수소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긴 했지만 원자로 내부 손상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해 12월 도쿄전력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가장 먼저 폭발이 일어난 1호기의 경우 핵연료봉을 감싼 압력용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또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바닥 콘크리트까지 녹아내려 방사성 물질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차이나 신드롬' 직전에서 멈춘 상황이었다. 2, 3호기의 경우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뒤 압력용기 바닥에 쌓여 콘크리트 벽을 침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사고의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을 가장 높은 단계인 '레벨 7'로 최종 규정했다. 이 등급은 '방사성 물질의 중대한 외부 방출로 인한 대형사고'를 뜻하는 것으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소련 정부의 정보 은폐로 정확한 공식기록이 없으나 유엔(UN) 등 국제기구와 환경단체들은 9300명에서 9만 명가량이 숨지고 구소련과 유럽 전역에서 800만 명 이상이 방사선 피폭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쉬쉬하고 속이는 정부, 불안한 국민 "개인적으로는 사고가 난 후 제가 있던 도쿄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을 먼저 피난시켰고, (본사에서 온) 취재팀을 돌려보낸 후 저도 최악의 경우 지하실로라도 피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정남구 <한겨레> 경제부장)정 부장은 사고 이후 2년가량 일본에 더 머무르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30km 떨어진 지역을 여러 번 취재했다고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접근 가능한 지역은 후쿠시마 원전 바로 아래 이와키시와 인구가 많았던 고리야마시 부근이었는데, 방사능 수치를 계산해서 24시간 동안 머물렀다가 빠져나왔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대피구역 바깥에 살던 사람들도 피난을 가서 이들 지역은 당시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보를 교환할 수 없었습니다. (피난) 주민들은 긴급 물자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고, 지역의 방사능 수치 정보도 없어서 어디로 피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사고의 공포를 애써 잊으려 하는 사람들"원전이 폭발한 지 3년. 많은 시민들은 애써 그날의 공포를 잊고 싶어 합니다.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한 이홍기(55) 감독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 제작진은 내레이션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이 영화는 사고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주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나눠준 먹거리와 각지에서 보내온 모포, 옷가지 등 생필품에 의지해 컨테이너로 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영향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측정 수치를 믿을 수 없다며 직접 마을과 집안 곳곳에 방사선 측정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일본 미야기현 시로이시에 사는 하세가와 치하루씨는 영화에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라며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성 물질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 응답자의 35%가 '매우 걱정한다', 42%가 '다소 걱정한다'고 답했다. 지난 2012년 2월 한국에 온 오카 에리코(28, 동국대 식품산업관리3)씨도 방사능 영향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고 당시 일본 나고야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전 사고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도 아직 원전을 줄이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불만이 있습니다."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데다가, 건강 피해가 대개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방사성 물질의 속성상 일상에서 쉽게 경각심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오카씨도 "사고 직후에는 생선을 먹을 때나 비가 내릴 때마다 걱정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소비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라고 밝혔다.
후쿠시마를 떠났던 최유희씨 가족들도 2013년에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최씨의 아버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후쿠시마현에서 방사능 제염(오염제거) 사업을 하고 있다. 최씨는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라며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인지 아직까지 잘 느끼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일본 땅 방사능 오염 심각'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