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겉표지
알에이치코리아
미국 작가 마이클 코넬리(1956~ )는 자신의 1996년 작품인 <시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계에 관한 이론이다.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에게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거기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체에 관한 이야기다. 형사가 보고 견뎌낼 수 있는 시체의 수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숫자는 사람마다 다르다. 살인사건 수사를 1년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년 동안 시체를 봐 와도 끄떡없는 사람이 있다.
그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그 한계를 넘어서면 그때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체를 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부서를 옮기던지 심리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은퇴하거나 알코올에 의존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자신의 입안에 총알을 박아넣을 수도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람마다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원고지 1000장이고 어떤 사람은 원고지 100만장이고.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분량을 넘어서서 글을 쓴다면 뭔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억지로 쥐어짜낸 듯한 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 출입기자 출신의 작가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을 읽을 때면 '이 작가에게 허용된 글의 분량은 얼마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만큼 마이클 코넬리는 굉장한 다작형의 작가다. 그것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15편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다. 다른 하나는 작품마다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흔히 말하는 '스탠드 얼론(Stand Alone)' 작품들이다. <시인>이나 <보이드 문>, 2011년에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원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역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다. 해리 보슈의 본명은 '히에로니머스 보슈(Hieronymus Bosch)'다. 약간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것은 중세 네덜란드의 화가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품에서는 무조건 '해리 보슈'로 지칭된다.
마이클 코넬리는 'LA 타임스'에서 경찰청 출입기자로 일을 하면서 이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러면서 해리 보슈에게 베트남전에서 '땅굴쥐'로 복무했던 경험을 부여했다. 베트남의 지하 땅굴들을 헤메고 다니며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워하며 군생활을 한 것이다.
해리 보슈의 과거를 이렇게 독특하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이클 코넬리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앞에는 낡은 터널이 하나 있었다. 높이 150㎝에 길이 12m 정도의 터널이다. 그 안은 진흙과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회반죽 부스러기와 벽돌들로 차 있었다. 천장에는 온갖 식물뿌리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일종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동네에서, 열 살이 넘는 남자아이라면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그 터널을 혼자서 통과해야했다. 안그러면 겁쟁이 취급을 받거나 왕따가 된다. 마이클 코넬리도 때가 되자 그 일을 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악몽으로 남았다.
그 터널에서 해리 보슈가 탄생한 셈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또 해리 보슈에게 그만의 원칙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사건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는 것이다.
조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