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미디어다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을 '전자셔먼'이라고 했다. 즉 죽은 자와 산자를 연결하는 셔먼일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와 30세기를 연결하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영매'이고 그 다리를 놓은 '매치메이커'였다
최재영
어쨌든 백남준은 1999년 말에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에게 과제를 남겼다.
"그러면 왜 우리단군은 이스라엘의 모세처럼 세계적 거물이 못되었느냐? 삼국사기가 구약성서에 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민족의 유리표방을 거치지 않고 그래도 안정된 중견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개개인으로 볼 때, 우리는 유대인만큼 문화나 과학에서 세계사에 기여하지 못했다. 21~30세기 한국인의 과제는 여기에 있다."그렇다. 우리는 강대국 속 분단국가에 살면서 어느 나라보다 많은 고통을 받았기에 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 그것도 부족하면 미디어 그 자체인 백남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미디어란 '영매(靈媒)', 중매자(meditator)', '매치메이커(match maker)', '피스메이커(peace maker)'로도 해석되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런 미디어가 돼야 한다.
백남준도 "한국이 20세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21세기에는 크게 성공할 것이다" 하지 않았나. 우리도 백남준이 앞서 보여준 삶을 본받아 오랫동안 나라 없이 떠돈 유태인이 인류문화사에 크게 기여했듯 21세기에는 우리도 세계문명사에 기여해야 한다. 우선은 주변 4대강국에 도움이 되는 통일을 슬기롭게 유도해 세계평화에도 촉진제가 돼야 한다.
이런 점에 대해 박만우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도 인터뷰에서 한마디 보탠다.
"제가 깨닫는 건 유태인이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세계문화사에 크게 기여했는데 그걸 보면서 그들이 뿌리 뽑힌 삶을 살았지만 '약자의 힘(철학용어)'을 발휘했다. 우리도 그게 가능하다. 20세기 당한 고통만큼 21세기에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이영철 초대관장은 우리에게 숙제를 준다. 서양의 유명미술사가가 쓴 책 중 백남준 깎아내리는 예는 많단다. 예컨대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등이 쓴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보면 백남준을 '플럭서스'의 한 회원으로만 봤고 그의 예술파트너 '샬럿 무어먼'을 성적 대상화했다니 놀랐단다. 우리가 백남준을 연구하고 탐구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2월 5일 영풍문고에서 본 '타센(Taschen)'미술출판사에서 나온 <비디오아트>라는 책에서는 앤디워홀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서술돼 있었다.
그러면서 이영철 관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예술의 대부분이 일찍이 그가 예견했고 실험했던 범위 안에 있다며 그러기에 백남준은 '초국가적 장기프로젝트'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도차원에서 지원하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예산을 쓰는 국립미술관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우리는 지금 백남준 아이디어를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다. 일상에서 정치까지 한반도 통일은 물론 세계평화를 구현하는 방안 등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도 '백남준상'이 있지만 독일에선 일찍이 2002년부터 '백남준상'을 만들어 세계적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한국에도 그의 이름이 붙은 거리, 미술관, 대학교, 연구소 등이 더 생겨야 한다.
이제 1인 미디어시대 우리 모든 국민은 첨단의 스마트 폰을 무장하고 디지털 노마드 전사가 되어 국민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백남준의 가치도 다시 세우고, '자존감, 자신감, 자부심'을 되찾아 '탈영토 제국주의'를 만들어가야 하리라. 백남준은 "내일은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했는데 한국의 내일도 그를 통해 세계 속에서 아름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