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철수와영희
이름을 모르면 서로 어떻게 부를까요? '저기'라든지 '거시기'라든지 '여보셔요' 하고 부를 테지요. 때로는 '야'라든지 '너'라든지 '거기'라든지 외치면서 부를 테고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야! 임마!" 하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버이한테 "너! 임마!" 하고 부르지 않아요. 어버이도 아이도 서로서로 사랑스럽고 따사로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릅니다.
이웃이라면 이름을 알고, 동무라면 참말 이름을 알지요. 그리고, 이웃이나 동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아요. 이웃이나 동무가 되고 싶기에 이름을 묻고, 이웃이나 동무로 지내려고 마음 깊이 이름을 새깁니다.
'크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하다'라는 말을 썼어. 우리가 잘 아는 '한강'은 한자로 쓰기도 하지만 본디 뜻은 '큰 강'이지. (16쪽)어른들은 그 친구의 머리를 보며 '말총머리'라고 했어. 그때는 '말총'이 뭔지 잘 몰랐어. 말은 가축이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말이 없어서 말총을 본 적이 없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말총은 '말 꼬리털'을 뜻하는 거였어. (35쪽)이주희 님하고 노정임 님이 글을 쓰고 안경자 님이 그림을 빚은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철수와영희,2015)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꽤 지난 일인데, 스님 한 분이 자그마한 멧자락하고 골짜기하고 숲을 지키려고 '꼬리치레도룡뇽'이라는 이름을 부르던 때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그냥' 도룡뇽도 아닌 '꼬리치레도룡뇽'이라는 이름은 무척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스님 한 분이 이 도룡뇽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그저 가뭇없이 사라질 뻔하던 작은 숨결 숲동무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무렵에 부쩍 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강원도 멧골을 휘감으며 흐르는 작은 물줄기 동강에서 사는 '쉬리'라든지 '비오리' 같은 이름을 살가이 부르던 사람들 모습도 떠오릅니다. 쉬리라든지 비오리라는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닙니다. 이 숲동무요 숲이웃이 사는 터전을 곱게 지키거나 보살필 수 있을 적에, 사람들이 사는 보금자리하고 마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이 흐르는 이름이지 싶습니다.
<동물과 식물 이름에 이런 뜻이?!>라는 책은 바로 이 대목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동물이나 식물하고 얽힌 이름을 말밑이나 지식이나 정보로 헤아리기보다는, 동물이나 식물하고 얽힌 이름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우리 삶을 둘러싼 깊고 너른 숨결 살피자는 이야기이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