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토레토, <이집트로의 도피>. 베네치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요셉의 모습에서 틴토레토가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요?
박용은
그림 속 요셉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말씀. 그 엄청난 운명을 요셉은 어떤 심정으로 견뎌냈을까요? 아니면 마리아에 대한 사랑이었을까요? 신의 말씀으로 태어났다는, 누구의 씨인지도 모를 자식을 낳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신의 말씀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을까요?
다시 그림 속 요셉을 봅니다. 추격하는 로마 병사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리아와 예수를 노새에 태우고 자신은 지팡이도 챙기지 못한 채 황급히 이집트로 달아나고 있는 요셉. 그 늙은 요셉의 모습에서 틴토레토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가 하면, <빌라도 앞에 선 예수>의 한없이 고독한 모습에는 틴토레토 자신의 고독함이 스며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틴토레토. 하지만 후대의 화가들은 그를 '화가 중의 화가'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 위대한 매너리스트, 엘 그레코는 틴토레토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까? 그런 사람은 반드시 이곳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 와서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매너리즘 미술'을 통해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을 얻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여행 선배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미술관과 성당들을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간혹 만나게 되는 근, 현대 미술은 왠지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된다는... 실제로 나도 피렌체나 토리노, 베로나 등에서 몇몇 근, 현대 작품들(그중엔 심지어, 모딜리아니도 있었습니다)을 접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출발 전 일정을 짤 때, 베네치아의 일정 중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Collezione Peggy Guggenheim)'을 넣을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미술 기행'이라는 이번 여행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냐는 것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좁은 골목과 다리를 건너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오로지 현대 미술 작품들만으로 구성된 미술관으로 향하는 기분은 묘합니다. 그것도 이탈리아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 베네치아에 자리 잡은 현대 미술관은 그 외관부터 궁금합니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