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걱정하는 한상균 "힘내세요, 투쟁"지난 1일 오후 조계사에서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 입장발표 기자회견 도중 관음전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한 위원장은 "12월 5일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많은 민중들이 올라온다. 이 목소리를 정부는 들어야 한다"며 "헌법에 보장된 시위를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유성호
홍수는 노동개악이다. 현재 상황에서도 대다수 노동자는 생존위기에 있는데, 여기에 노동개악이 더해지면 노동자들은 거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다. 이 노동개악의 핵심은 "일반해고 요건 완화,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확대, 임금피크제 통한 청년고용"이다.
이를 하나하나 따져보자.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과도하게 보호받는 정규직 근로자의 특혜 등을 다소 줄여 비정규직에 나눠주는 '상생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불가피하며,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보호 강화와 정규직의 기득권 축소라는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1000만 명이 넘는다. 통계 추산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850만 명인데 여기에는 최소 2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과 불법파견이 빠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며(평균 49.4%), 언제든 해고당할 위기에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 3년을 같은 자리에서 일했어도 그 가운데 22.4%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50.9%는 여전히 비정규직이었고 26.7%는 실직 등으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와서 노동시장을 별다른 규제 없이 유연화 할 수 있기에 신규고용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서 임금의 절반만 지급하며 과잉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정규직의 임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힘든 것을 악용하여 비정규직을 헐값에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극단의 상황인데 여기서 더 유연화 하라는 것은 거의 대다수 노동자를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만 받으며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어도 노동3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비정규직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를 노예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정규직 채용감소와 산업시설 해외 이전의 한 원인이며, 파견제·기간제 근로자 사용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적재적소에 인력을 운용하고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에 유리하게 제정된 실정법으로도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이를 때에만 해고가 가능한데, 자본은 회계조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워두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쌍용자동차를 예를 들면 회사 측은 적자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여 2646명의 노동자를 구조조정 하겠다는 방침을 노동조합에 통보하고 그 가운데 1666명을 희망퇴직으로 내쫓고, 나머지 980명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이 이에 파업으로 저항하자 국가는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서 전시의 적에게나 행하는 폭력을 선량한 노동자들에게 휘둘렀다. 실제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52.3%의 노동자들이 참전 병사들이나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렸다.
파업과 폭력의 후유증, 생계 위기, 아득한 절망감 속에서 노동자나 그 가족이 우울증을 겪거나, 이혼당하거나, 생이별을 한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결국, 쌍용자동차 한 기업에서만 28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자살하거나 병으로 죽었다.
해고 노동자들이 송전탑과 굴뚝 위에서 수십 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40일 이상 단식투쟁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시민사회가 연대했지만, 단 한 명도 복직하지 못하였고 진상 조사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도 차이만 있을 뿐, 이와 유사한 일이 전국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려 해고 요건을 완화하여 성과나 근무태도 불량으로도 해고하게 된다면, 모든 노동자가 해고 대상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해고는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어 노동운동은 파편화하고 집단적으로 해고에 저항하는 길이 봉쇄된다.
정규직 채용 감소는 과도한 보호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였기에 근본적으로 고용을 줄이고 정규직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 두 배의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해외 이전은 신자유주의 체제와 세계화에 따라 임금이 싸거나, 운송비가 적게 들거나, 원자재 공급이 쉽거나, 세금이 적은 곳에 공장이나 회사를 두려는 것이지 정규직 과보호 때문이 아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근로자는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으며 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숙련된 인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감된 인건비로 청년층 신규채용도 가능하며, 정년 연장에 따라 5년간 추가 발생하는 비용이 115조 902억 원이며 이를 일자리에 투자할 경우 2019년까지 청년 일자리 18만2339개를 창출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50대 초반에 퇴직하는 현실은 개선하지 않은 채 강제적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이는 임금삭감 수단이 될 뿐이다. 지금 장기 불황에 접어든 것은 소비가 죽었기 때문이다. 30대 대기업이 곳간에 쌓아둔 돈만 710조 원이나 된다. 이는 정부가 금융과 특혜로 엄청 벌게 해줬지만 경기 불황 속에서 투자할 곳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이윤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하면 기업은 그 비용으로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고용 증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어서 안 하고 있는 것이기에, 임금피크제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다. 때문에 대다수 기업들은 여론에 밀려 생색내기 정도로만 고용을 증대할 것이며 그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데 그칠 것이다.
정부는 "귀족 노조가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쓸데없이 저항하기에 기업은 사업하기 힘들고 경제는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변경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았기에 노동자에게 그리 불리할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협의'는 '합의'와 달리 강제성이 없어 형식적 절차로 끝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조합가입률이 10%인 상황에서 노조가 없는 나머지 90%의 노동자는 협의조차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해고당하고 불리한 취업규칙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만 세월호 참사의 6배가 넘는 1929명이 산업재해로 죽을 정도로 한국의 산업 환경은 세계 최고로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측이 별다른 저항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도록 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더욱 걸릴 위험성이 농후하다.
특히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노동3권을 행사하는 것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는 규정으로 악용될 것이기에,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제한하고 노동자를 불의와 불이익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노예로 만드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더구나 노동3권의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에, 이 조치는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한다.
이처럼 노동개악이 되면, 가뜩이나 생존위기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는 실질적으로 노동 3권을 제한하여 노동자를 노예신분으로 전락시켜서 부당하게 해고 당하고 탄압을 받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 그러기에 노동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노동개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악법 중에서도 악법이다. 그러니, 이 싸움의 중심에 서 있는 한상균 위원장은 이를 저지하기 전에는 조계사를 나올 수 없다.
한국 경제와 노동자가 다같이 사는 길